“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손자가 한 충격적인 한마디” 시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가족 모두가 모인 자리, 그런데 손자가 내뱉은 진실에 모두가 충격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년 전에 같이 살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시아버지는 훨씬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남편과 나 그리고 중학생 아들 셋이서 시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켰다. 시어머니는 생전에 나를 굉장히 미워하셨다. 평소의 욕은 기본이고 물건이 날아오거나 발길질을 자주 당했다. 나는 집에서 큰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나만 참으면 조용히 지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계단에서 크게 넘어졌고 골반의 골절로 한동안 방에서 누워있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고 덕분에 나는 신체적인 괴롭힘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시어머니는 새로운 방법을 동원해서 나를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이 시어머니에게 폭언을 듣는 것에는 이미 아주 익숙해져 있었는데,

방에 누워만 있는 시어머니는 온종일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나를 욕하고 비난했다. 시어머니는 거동을 전혀 할 수 없었고 나 혼자서 수발을 들기에는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간호인을 고용했는데 시어머니는 간호인에게 며느리가 자신을 학대한다면서 없는 사실을 진짜처럼 꾸며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어머니의 폭언과 함께 나를 보는 간호인의 이상한 눈초리까지 감당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간호인이 신고를 해서 경찰들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간호인은 시어머니가 몸에 생긴 상처를 보여주면서 며느리에게 당했다고 하소연을 했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 상처들은 시어머니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경찰 조사를 통해서 나의 무죄는 당연히 입증되었지만, 당시에 내가 느낀 수치심과 모멸감 감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집살이에 지쳐가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허리 통증이 심각하다고 해서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척추에서 종양이 발견되었고 그대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시어머니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고 나는 솔직히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굉장히 홀가분해짐을 굉장히 미워하셨다. 평소의 굉장히 사소한 일로 나를 자주 굉장히 미워하셨다. 평소의 그럼에도, 일단 병원만 다녀오면 집에서는 시집살이에서 해방된 상태라고 생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시어머니는 병원에서도 같은 입원실에 있는 사람들과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쉬지 않고 나에 대해 험담을 했다. 그러나 간호사 선생님들은 평소에도 여러 환자를 상대하고 다양한 인간성을 겪었기 때문인지 시어머니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단번에 눈치를 챘다.

저런 시어머니와 함께 사시느라 보호자 님이 정말 힘드시겠어요. 병원에 갈 때마다 자주 눈 인사를 하던 간호사 선생님께서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셨다. 지금까지 시어머니의 계략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만 보다가 처음으로 나를 이해해 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굉장히 신선하기도 하고, 마음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시어머니에게 폭언을 듣고 있던 어느 날에는 힘들게 매일 돌봐주시러 오는데 왜 그렇게 무서운 욕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세요. 라고 간호사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았고 시어머니는 자신의 거짓말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분하고 원통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의 괴로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매일 병원에 다니는 것이 예전처럼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족분들은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담당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수일 후에 병원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고 가족 모두 서둘러서 시어머니에게 향했다.

시어머니는 항상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지만 손자를 굉장히 예뻐했고 아들에게도 다정한 어머니였다. 우리 가족이 병실에 들어서자 시어머니는 다급하게 손자부터 찾았다.할머니는 이제 곧 천국에 가는데 거기에서도 우리 손자 계속 지켜볼 거야.슬퍼하지마 시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러나 말을 듣고 아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뭐라고요. 십수 년 동안 엄마를 그렇게 괴롭혔는데 할머니가 천국을 어떻게 가요 시어머니는 손자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갑자기 상태가 악화하였고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입증되었지만, 당시에 아들의 갑작스러운 말에 상당히 놀랐지만 일단 시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를 준비에 집중했다.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장례식 마지막 날의 남편이 지난 일은 전부 다 있고 이제 우리 세 식구 마음 편하게 잘 살아보자

옆에 서 있던 아들의 어깨에 팔을 올렸는데 아들이 남편의 팔을 강하게 뿌리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빠는 엄마가 할머니한테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항상 못 본 척했잖아. 근데 무슨 인제 와서 가족이라는 거야. 나는 당신을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남편은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아들은 확실히 맞는 말을 했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눈앞에 있을 때에도 나에게 욕을 하고 물건을 집어 던졌다. 그러나 남편은 항상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이 본인의 할 일만 했고 아들은 모든 것 그것을 지켜보면서 성장했던 것이다.

아들은 자신을 예뻐해 주는 할머니에게 몇 번이나 엄마를 그만 괴롭히라고 부탁을 했었다. 나를 구해 줄 의지가 전혀 없었던 남편과는 다르게 아들은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볼 때마다 내 편을 들어주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무렵에 나는 결국 남편과 이혼을 했다. 이제는 시집살이 시키는 시어머니가 없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신뢰가 무너진 남편과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연을 끊겠다고 선언을 했고 자연스럽게 아들의 친권은 내가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아들이 결혼했고 손주의 탄생도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아들은 원래 전 남편과 나 그리고 시어머니의 비상식적 적인 관계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결혼과 가정을 가지는 것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그랬던 아들이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연애를 하면서 직관이 바뀌었는데 매력적이고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 부부는 임신 소식을 전하면서 나와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예전부터 며느리가 불편해하는 시어머니는 절대로 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기에 엄마는 너희가 와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먼저 너희 집에 가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너희가 엄마를 만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오면 돼 같이 살지 않아도 서로 보고 싶을 때 만나면 되는 거야라고 아들 부부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한 달 후에 아들 부부는 내가 사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깜짝 놀란 나에게 아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를 만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와도 된다고 했잖아. 우리는 엄마를 매일 만나고 싶어. 나는 자리에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짐 정리를 마치고 한숨 돌리고 있는 새 아가에게 왜 같이 살자고 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남편한테 어머니가 고부갈등으로 오랜 세월 힘드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요. 남편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거의 못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남편에게 어머니한테 가족에 대한 괴로운 기억만 가득하다면 우리가 같이 살면서 즐겁고 행복한 가족의 기억을 새롭게 만들어 드리자고 말했어요.

나는 새 아가 앞에서 또 울고 말았고 아들에게도 나에게도 정말 과분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우리의 동거는 시작되었고 서로의 생활에 크게 간섭하지 않으면서 집안일은 내가 더 많이 하려고 했지만, 임신 중인 새 아가도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하는 정도의 암묵적인 규칙이 정해지기도 했다. 초반에는 정말 같이 살아도 괜찮을까 싶었는데, 바로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 아가는 밝은 성격으로 햇살 같은 사람이었다. 매일 같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웃게 되었고 존재 자체 만으로도 위로 받는 느낌이었다. 아들도 아마 새 아가와 함께하면서 상처로 얼룩진 마음이 많이 치유되었을 것이다.

행복한 하루하루가 지나고 드디어 손녀가 태어났다. 작고 꼬물거리는 아기는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전 남편과는 이혼 후에 한 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손녀를 보고 있으니 소식이라도 전에 하나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게 아버지와 연락한 적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그딴 인간하고 연락한 적 없어 앞으로도 절대로 안 할 거야. 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전 남편과 시어머니와 함께 살 때는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어떻게든 빨리 하루가 끝나기만을 바라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행복해서 시간이 빨리 는 게 아쉬울 정도이다. 지금의 이 행복은 전부 아들이 만들어준 것이다. 아들의 노력과 작은 행동들이 만들어준 기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들과 새 아가에게 감사함을 잊지 않고 앞으로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겠다고 마음속 깊이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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