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개나리가 필 무렵, 엄마는 하늘 나라로 가셨습니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도 아빠께 우리 남매를 부탁한다고 눈물지어셨다고 합니다. 중학생인 오빠와 아직 어린 나.
문상 온 사람들의 한마디 “아이고, 불쌍해서 어쩌나, 남자 혼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꼬” 걱정 썩인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 나왔습니다.
엄마는 남겨진 추억속에서 살고 있었고, 아빠는 엄마몪까지 채워가며, 우리 남매를 길러야만 했습니다.
아빠 혼자 힘이 들었을까? 내가 중학생이 되던 여름 어느날, 아빠는 새엄마에게 인사를 하라며 어떤 여자분을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
“이제 너희들 엄마이니까 엄마라고 불러. 말 잘 듣고, 힘들게 하지마라 알겠니?” 나랑 오빠는 그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아빠는 한번도 하시지 않았던 매를 들었고, 오빠는 엄마라고 불렀지만, 새엄마에게 엄마라고 하는 순간 돌아가신 엄마가 나의 곁을 영영 떠날 것 같은 마음에, 아빠의 맷 자국이 더욱 심해 질 수록 나는 입을 닫고 말았습니다.
“제발 그만 좀 하세요. 불쌍한 아이한테 그러지 마세요. 난 괜잖으니까 애들 아프게 하지마시고 시간을 주세요 네?” 새엄마의 말림에 아빠의 매질은 끝이 났지만, 아빠는 엄마 사진을 가져가버렸습니다. 사진때문에 새엄마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새엄마는 너무나 착한 사람이고 희생적인 사람이었지만, 그럴수록 나는 위선같아서 싫었고, 새엄마의 존재를 부정하였습니다.
가을 소풍날, 나는 도시락을 싸달라 하지 않았습니다. 식구들에게 말하기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점심을 먹기 시작할 무렵, 저 멀리서 새엄마가 도시락을 들고 나를 찿고 있었습니다. 옆집 아주머니가 말 해 주었나 봅니다.
도시락을 받자마자 새엄마가 보는 앞에서 물속으로 도시락을 던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언제 도시락 싸달라고 했나?” 깜짝 놀란 새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걸어 가셨습니다. 난 게의치 않았습니다. “흥 울던지 말던지…”
고등학교 진학상담..
집과 가까운 인문고를 가라 하셨지만, 나는 이집에서 멀리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새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기도 싫었고, 집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않겠다 다짐하였습니다. 산업계학교에 원서를 냈고 12월이 될 쯤에 산업체로 취업을 나가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가방을 꾸리는데, 새엄마가 울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집에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결심했습니다.
도착해서 가방 정리를 하다가, 맨 밑에 까만 비닐봉투가 있어 열어보니, 새로 산 양말이랑 속옷, 내복 한 벌이 들어있고, 편지지가 곱게 접어 있었습니다. 아빠가 나에게 뺏어간 엄마 사진이 들어있었고, 새엄마의 편지글이 적혀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순간 난 눈물이 펑펑났고 새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한 순간 눈 녹듯이 녹아내렸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습니다.
첫 월급을 타고 맞은 일요일, 아빠, 엄마, 새엄마 이렇게 내복 세 벌사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창 밖에는 밤새 내린 눈으로, 들판이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새엄마는 동구밖에 나와 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있었고, 눈을 쓸어 길을 만들어 놓어셨던 거였습니다.
“새엄마 그 동안 속 많이 상하셨었죠? 죄송해요. 이제부터 이 내복처럼 따뜻하게 엄마로 모실께요” 옹알옹알하는 나를 새엄마는 따뜻한 두 팔로 감싸안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