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수많은 미인들이 배출이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은 1977년 미스코리아 진 김성희 씨를 역대 최고 미스코리아로 뽑곤 합니다.
하물며 당시 그녀가 한창 활동할 때의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한 분들도 이따금씩 레전드 미스코리아 김성희 씨의 소문을 듣고 뒤늦게 찾아보며 감탄을 하는 분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될 만큼 역대 최고 미인으로 손꼽히는 그녀는 왜 갑자기 방송계에서 홀연히 사라지게 된 것일까요?
김성희 씨 는 1959년에 태어난 씨는 올해로 60세 살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피아노와 노래를 배웠으며 작곡까지 공부하였습니다.
김성희 씨는 어릴 때부터 닦아온 작곡 실력으로 본인의 자작곡을 무려 60여곡을 발표하며 앨범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과 다르게 과거에는 혼자서 노래와 작곡을 동시에 하는 여자 싱어송라이터가 정말 드물었는데 놀랍게도 그녀의 이런 아티스트적인 면모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가 너무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보니 아티스트로서의 김성희 씨는 상대적으로 묻혀서 저평가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김성희 씨는 19살의 나이에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당당하게 진을 차지하며 최연소 미스코리아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에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도 2위를 입상을 하며 더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5년 뒤 1982년 김성희 씨는 정식으로 가수로 대비하여 그의 신인과 수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밖에도 인기 프로그램의 MC를 맞는 한편, 드라마에 출연하여 배우로서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그녀는 지금으로 말하면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MC 가수 배우 등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큰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다 그녀는 황당한 사건을 겪게 되는데요. 김성희 씨의 한 열성 팬이 그녀 몰래 혼인신고를 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김성희 씨를 너무 좋아했던 한 극성 팬이 마음대로 자신의 호적에 김성희 씨를 아내로 혼인신고를 해버린 것이죠.
나중에 극성팬은 정신 이상자로 밝혀졌는데 이후 갑자기 김성희 씨의 집까지 찾아왔고 결국 경찰에 잡혀 이 사건은 일단락이 나게 됩니다.
허위혼인 신고로 김성희 씨는 큰 충격과 상처를 받게 됩니다. 당시 이 사건을 겪은 그녀는 극성 팬이 몰래 혼인신고를 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팬들의 잘못된 사랑 때문에 연예인 생활에 염증도 느꼈다고 합니다. 솔직히 방송도 하려고 한 게 아니고 어쩌다 연결이 되어서 하게 된 거라고 하는데요.
“미스코리아가 된 후에 가수도 되고 모델 활동도 하고, 연기도 하고, 연예계 활동은 순조로웠던 반면에 개인적으로는 무척 외로웠습니다.”
“미스코리아가 된 다음에 친구들도 저를 멀리하고 제 원래의 모습도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라며 당시 복잡한 신경을 직접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미 그녀는 연예계 활동에 회의를 느끼며 이때부터 김성희 씨는 방송을 멀리하게 됩니다.
이후 1988년 김성희 씨는 의상 디자이너로 변신하여 청담동의 의상실을 오픈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의 의상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정경환 씨와 같은 건물에 있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악성 루머들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 매체에서는 사실 확인을 하거나 어떠한 명확한 근거를 대기보다는 김성희 씨와 정경환 씨의 허위 스캔들 자체만을 보도하기 바빴는데요.
김성희 씨는 크게 분노하며 이 매체를 명예에손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이런 추측성 보도들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고 소송의 결과는 해당 매체에 대하여 사과문 게제와 2000만 원 배상을 판결하며 일단락이 납니다.
이후 김성희 씨는 연예게 활동을 은퇴하며 원래 관심이 있었던 패션 디자인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미국에서 사업가 이승원씨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남편 이승원씨는 당시 큰 상처를 받았던 김성희 씨를 잘 보듬어주었다고 하는데요. 이후 김성희씨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아들 셋을 낳게 되고 가정생활에 푹 빠져 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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