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너무 충격적이고 안타깝다.”, ’70년대 이효리’ 로 불리던 김형자의 화려한 모습 뒤 감춰진 반전 인생사, 충격적인 이혼사유

시대를 앞서간 육감적인 몸매와 큰 키로 1970년대 남성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김형자, tbc 공채 10기 탤런트로 데뷔한 그녀는 70년대 이효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효리가 찍었던 망고 음료 cf의 원조도 바로 그녀였고 젊은 시절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외모로 당대 최고의 비키니 여신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영화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아 제21회, 26회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7,80년대에 많은 사랑을 받으며 화려한 연예인으로서는 누구보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러나 밝은 모습 뒤에 감춰진 인간 김형자의 삶은 행복보다는 깊은 슬픔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하며 살아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뜬 두명의 아이는 여전히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1938년 군수 딸이었던 김형자의 어머니와 부잣집 아들이었던 김형자의 아버지가 1930년대 당시 흔치 않았던 연애 결혼을 했고 그녀의 어머니가 김형자를 임신했을 때 6.25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김형자를 낳기 전 이미 딸만 3명을 낳은 상태라 내심 아들을 기다렸는데 그런데 넷째마저 또 딸이 나오자 아들 노릇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형자 돌림에 아들 자를 써서 김형자라 짓게 됩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녀가 7살때는 아버지가 사업을 한다며 서울로 올라갔는데 어느 날부터 가족들과 연락이 끊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녀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찾기 위해 김형자를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뒤 한 다방에서 낯선 여자로부터 현재 그녀의 아버지가 어디서 누구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어린 김형자의 손을 잡고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간 7살의 김형자는 어찌 하다 보니 낯선 집앞에 도착했고 어머니가 이 집에 문을 여는 순간 한 여자가 아기를 낳은지 얼마 안 됐는지 몸조리를 하며 누워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외도로 낳은 자식으로 말 그대로 혼외자였고 결국 이날 이후로는 아버지를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이후부터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가 홀로 딸들을 키워야 했고 어린시절 기억 속 어머니의 모습은 ‘늘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가장으로서의 부담으로 우화가 치밀어 힘들어 하던 모습이 거의 대부분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어머니의 힘든 모습을 자주 보던 김형자 그녀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우선 돈부터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은 직업인 배우의 길을 걷기로 마음 먹게 됩니다.

1970년 tbc 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녀는 앞서 얘기한 대로 청순한 외모와 큰 키, 육감적인 몸매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큰 사랑을 받게됩니다.

또한 드라마나 영화 같은 정극 연기도 뛰어났지만 예능에도 소질이 있다보니 당시 방송사에서 그녀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시절 결혼까지 약속했던 첫사랑의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의 어머니가 ‘우리 집안에 딴따라는 절대 안 된다’며 극심한 반대를 했습니다.

그때 너무 속이 상했던 그녀는 결국 그 남자와 이별 후 첫 번째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한편 그 첫사랑의 남자를 30년 뒤에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데 30년이나 흘렀는데도 예전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그녀는 굉장히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그녀가 교통사고가 나서 집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그 남자가 생각이나 ‘내가 이렇게 아픈데 와줄 수 없나’싶어서 대뜸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전화를 확 끊어버렸고 그러고는 며칠 있다가 우연히 그 남자의 소식을 들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한때 너무나도 사랑했던 사람이라 우연히 만났던 그날 그냥 가라고 보냈던 게 너무 아쉽고 지금 생각해도 한번 껴안아 볼거라는 생각에 후회가 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돌아와 첫사랑과 이별 후 영화배우 김경수와 결혼을 했지만 이후 8년 만에 결국 헤어지게 되는데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그 8년 간의 결혼 생활이 본인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불행 그 자체였다고 했습니다.

그 불행의 이유로는 당시 첫번째 남편과 사이에서 임신을 두번이나 했지만 한명은 배 속에서 채 나오기도 전에 생명줄를 놓았고 다른 한명 역시 낳자마자 숨을 거두는 슬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괴로움은 첫 번째 남편의 문란한 외도였는데 당시 남편의 문란함이 얼마나 유명했으면 방송국 관계자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남편의 외도를 알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너무 놀란 그녀가 온몸에 힘이 풀리고 사지가 떨려 이혼을 했어야 했지만 당시 여자 연예인이 이혼을 하면 방송 생활을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에 8년이라는 시간동안 어디에 말도 못하고 그저 참고 견디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힘든 생활에 결국 8년만에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게 됩니다. 그렇게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이제는 남자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고 남은 인생을 혼자서 살겠다고 다짐했던 그녀였습니다.

그러나 외로움과 새로운 삶을 향한 꿈에 그녀는 다시 흔들려 결국 3년만에 두 번째 남편과 재혼을 하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두 번째 남편은 첫 번째 남편과 완전히 반대되는 응석받이 기질이 다분했던 4살 연하의 남자였고 그래서 사는 동안 내내 남편의 경제적인 문제가 끊임없이 이어져 이번에도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두 번째 이혼을 할 당시 남편이 진 빚을 모두 갚아주고 혼자 살 수 있게끔 집과 살림살이까지 마련해주며 헤어졌는데 그런데 남편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지 한달만에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고 그 집에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어릴 적 아버지의 외도와 더불어 자신마저 두 번의 사랑에 실패하면서 솔직히 남자라면 이제 징글징글하다고 했으며 그리고 혹시나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고 해도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되살아날 것 같아서 이제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 무섭기까지 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김형자 그녀가 고백하길 “어느 집이나 보면 근심 걱정이 한 가지씩은 있더라. 우선 무엇보다 가족들이 건강해야 되는데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온 집안이 다 우울하다.”

“돈이 많은 집은 항상 건강이 안 좋은 집들이 많은 것 같고, 반대로 돈이 없으면 또 없는 대로 지지고 볶더라. 또 자식이 속 썩이지 않으면 부모가 아프거나 이처럼 집집마다 뭔가 꼭 걸리는 것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나만 생각하면 되고 나만 건강하면 되고 나를 위해서 살면 되니까 다른 것에 대해서는 걱정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남은 내 인생은 그저 행복한 나날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외롭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건강하고 경제적인 것들이 허락된다면 혼자 살아도 그저 감사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라고 합니다.과거 힘든 시절을 보냈던 그녀가 앞으로는 항상 웃을 수 있는 좋은일만 생기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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