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그릇만 주실 수 있나요..?” 매년 12월 31일 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우동 하나를 시키는 아이의 엄마 시간이 지나 어느 해 마지막 날 다시 찾아온 엄마와 아이들을 본 우동집 주인은 눈물을 펑펑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12월 31일 저녁, 새해를 2시간 남겨진 쯤 우동집 문이 드르럭 열립니다. 낮부터 말도 못하게 바빴던 우동집은 알바생들에게 수고 했다며 수고비를 챙겨 집으로 돌려보내고 주인부부도 마감을 할려고 할 때였습니다.

“우동 한 그릇만 부탁해도 될까요?” 두 남자 아이들 뒤에 서 있던 아이들 엄마가 여주인에게 물어봅니다. 두 아이들은 새 옷처럼 보이는 트레이닝 차림에 작은 아이는 6,7세 정도, 큰 아이는 10,12살 정도로 보였으며 엄마인 사람은 낡았지만 단정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고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예 되다 말다요. 어서 들어오세요” 2번 테이블로 안내를 하며, 주방일을 하는 남편에게 큰 소리로 “우동 1인분이요”

남편은 우동 한 덩어리와 반덩어리를 더 넣어 삶았습니다.

두 아이와 엄마는 한 그릇의 우동을 가운데 두고, 큰 아이가 한 젓가락을 떠서 엄마 입으로 넣어주면서 “많이 드세요”하고는 동생에게도 “많이 먹어”라며 우동을 맛있게 먹습니다.

“엄마 이 우동 정말 맛있어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모자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주인내외가 인사를 하였습니다.

새해가 되어서도 우동집은 변함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다시 12월 31일이 되었습니다. 가게 문을 닫으려고 준비를 하던 시간.

드르럭 가게 문이 열리며 “우동 한 그릇 괜찮을까요?

두명의 사내아이와 체크무늬 반코트. 1년전 그 세모자였습니다. “어서 오세요. 당연히 되죠”

2번 테이블로 안내를 하고, 주방쪽을 향해 “우동 1인분이요”라고 주문을 합니다. “네” 남편은 다시 우동 삶을 준비를 합니다. 여주인이 “여보 3인분으로 삶아 주면 안될까요?” 남편이 “안돼, 그러면 저사람들이 거북해서 다시는 안올거요”라면 우동 한 덩어리와 반을 삶습니다.

이번에도 여전히 세 모자는 맛있게 먹었다며 인사를 하고 나가려고 할때, 주인부부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 다음해 마지막 날, 우동집은 넘쳐나는 손님으로 가게를 넓혔지만 2번 테이블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가격도 당연히 올렸습니다.

다시 맞은 연말 저녁. 9시가 지나면서 주인 부부는 누군가를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2번 테이블에는 예약석이라는 팻말이 올려져 있고 우동 가격은 1년 전 가격과 동일하게 붙어있었습니다.

드디어 작년과 같은 시간.

“우동 이 인분 주문 해도 괜잖을까요?”

작년보다는 제법 키가 큰 아이 둘과 어머니. 얼른 예약석이란 팻말을 치우면서 여전히 2번 테이블로 안내를 하였습니다. “우동 2인분이요”

남편은 세 덩어리의 우동을 삶아, 두 그릇의 우동을 세모자에게 내어 놓았습니다. 세 모자는 그 날도 서로 많이 먹어라면서 맛있게 우동을 먹습니다. “엄마가 오늘은 너희 둘에게 반가운 얘기를 해 줄려고 해” 두 아들은 귀를 쫑긋하며 엄마의 입을 쳐다보았습니다.

“너희 아빠가 교통사고를 내고 돌아가셨쟎아. 그 당시에는 돈이 없어 사고로 다친 사람들 보상을 못해줘서 엄마가 그 사람들에게 약속을 했어. 몇 년 동안 일을 해서 꼭 갚겠다고 하니 그사람들도 흔쾌히 그러라해서 갚고 있었는데 그게 오늘 끝이 났단다. 오늘은 정말 기분 좋은 날이란다” 엄마는 상기된 어조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주인부부는 귀를 쫑긋 듣다가 서로 얼굴을 보며 “그런 일이 있었구나” 무언의 표시를합니다. 여주인이 소리없이 훌쩍하니 남편도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이제 우리 조금은 편하게 살아도 될것 같아. 그동안 고생많이 했어” 큰아이가 말하였습니다 “

엄마 우리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엄마를 도울게 없을까해서 저는 신문 배달을 하고 동생은 집안일을 했쟎아요. 그런데 저랑 동생은 하나도 힘든 줄 모르고 재미있게 했었어요. 그리고 동생 학교에서 발표회가 있다고 부모님 오시라고 했는데 엄마가 바쁘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갔다 왔어요. 학교에서 장래 꿈이 뭐냐라는 작문을 하라 했는데 동생이 일등했어요”

연말이면 우리 가족이 와서 먹고 간 우동집. 여기랑 같은 우동집을 차리는게 꿈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게를 나갈때 주인부부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소리가 너무 고마워서 잊혀지질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주인부부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동생이 저런 마음까지 먹을 줄은 몰랐습니다.

다음해, 그 다음해가 몇년이 지났지만, 이제 그 세 모자는 오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2번 테이블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마지막날 저녁. 드르럭 문이 열립니다.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두 남자와 그 뒤에 서 있는 어머니. 주인부부는 세 모자가 왔다 생각하였습니다. 2번 테이블로 안내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며 먼저 여주인이 물어봅니다.

빚을 다 갚고 세모자는 외가가 있는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되어 우동 먹으로 올 수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두 아들은 힘든 시절 한 그릇의 우동을 먹게 해 준 주인부부에 큰 감명을 받아 열심히 공부하여, 큰아들은 의사가 되었고 작은아들은 우동집을 차리진 않았지만 은행원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큰 아들이 우동집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 의사로 오게 되어 지난 세월 우리형제에게 힘이 되어준 우동집 주인부부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찿아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가게를 잊지 않고 찿아줘서 너무 고마워요.” 주인부부는 깊은 감명에 눈물이 쭈루루 흘렀습니다.

“우동 3인분 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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