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훌륭한 음식은 어떻게 내시는 건가요..?” 배우 김영철이 동네 한바퀴에서 촬영 중 사장님에게 음식비법을 물어보았고 사장님의 가슴아픈 사연에 눈물을 펑펑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2년 전, 배우 김영철 씨가 프로그램 촬영차
울산의 한 식당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김영철 씨가 앉은 식탁에는 반찬이 푸짐하게 차려집니다.
옆에서는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생가자미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습니다.

여러 반찬과 시원한 찌개 맛은 얼마나 훌륭한지…
김영철 씨는 음식을 맛보고는 연신 감탄을
쏟아내며 사장님께 말을 건넵니다.

“이렇게 훌륭한 밥상을 내는 게
쉽지 않으실 텐데…”

이 말이 도화선이 된 걸까요?
생가자미 찌개 식당을 운영하는 박숙이 씨는
가슴속 깊이 응어리져 있던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냈습니다.

“30년 동안 건설 현장에서 미장 보조 일을 했어요.
어떤 때는 시멘트 한 포에 40kg인데 그거를
하루에 100포 넘게 옮겨다가 모래와 섞어
개어서 가져다주고…”

젊은 나이에 남편은 어린 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고,
당시 6,000만 원의 빚을 남겼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6억 원이 넘는 매우 큰돈이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절망적이었지만
박 씨는 앉아서 울고 있을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게 건설 현장에서 미장 보조였습니다.
시멘트를 나르고 개는 미장 보조 일은
건장한 남자들도 쉽사리 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박 씨가 조금 쉬운 일을 놔두고 미장 보조를 한 건
다른 일보다 일당을 많이 줬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빚을 갚기 위해 그녀는 새벽 5시,
잠든 딸을 집에 남겨두고 공사장으로 향했습니다.
남들은 다들 작업복을 입고 일했지만
그 돈마저 아까웠던 박 씨는 친구들 딸의
낡은 교복을 빌려 입었습니다.

김영철 씨에게 힘든 시절을 찬찬히 풀어내던 박 씨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이 남긴 빚 6천만 원을 다 갚는데
꼬박 30년이 걸렸습니다.

“딸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초등학교 때 운동회 한 번 못 가주고,
점심시간에 잠깐 가서 짜장면 한 그릇 사주고 왔었는데..
그게 아직도 마음에 걸려요.”

어릴 때부터 늘 바쁘고 지쳐있는
엄마를 보고 자라온 딸은 말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없었어요.
온종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 젊은 나이에… 저 때문에 고생한 것 같아서
정말 죄송했어요.”

현재 모녀는 식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과 인생이 담긴 생가자미 찌개를
손님들에게 내어주며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건장한 남자들도 하기 어려운 힘든 노동을 하며
30년의 세월을 오롯이 견딜 수 있었던 건
오로지 하나뿐인 딸 때문에 견딜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어린 딸에게는 절대 빚을 물려줄 수 없다는 마음,
자신의 손은 거칠어지고 몸이 망가진 데도
내내 딸만큼은 웃게 해 주겠다는 그 마음이…
엄마를 세상 누구보다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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