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싶어요..” 빨간마후라 97세 신영균이 700억 사회에 환원한 충격적인 근황

96세의 원로 배우 신영균은 그동안 수백억 원을 기부했다. 알려진 기부도 있지만, 언제, 얼마를, 왜 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자주, 남몰래 기부를 해왔다. 그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짜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웃으며 말했다. 짜장면을 좋아해서 자주 사 먹었을 뿐, 오해라고 했다. 오래전부터 돈은 죽기 전에 좋은 곳에 다 쓰고 가자는 생각을 했고, 그의 기부는 이제 시작이라고 밝혔다.

지난 7월, 신영균은 이승만 기념관을 지을 부지를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년 가까이 살았던 서울 고덕동의 4000평 땅이었다. 한강이 보이는 금싸라기 땅을 기부하는 이유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이 고덕동 쪽 한강에서 낚시를 즐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즉흥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건국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신영균은 배우 외에도 치과 의사, 국회의원,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1960~1970년대에는 서울에 극장, 제과점, 볼링장을 열어 큰돈을 벌었다. 그는 손대는 것마다 잘 되었지만, 유일한 실패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쓴맛을 본 뒤 나무나 키워야겠다는 심정으로 고덕동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살았고, 시간이 지나 그 땅을 기부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기부는 2006년 즈음 시작되었다. 당시 50년 뒷바라지해준 아내를 위해 자녀들과 함께 금혼식을 성대하게 준비했지만, 억대 비용이 드는 것을 보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금혼식을 취소하고 불우이웃 돕기에 1억 원을 기부했다. 이전에도 어려운 동료 배우를 위해 몰래 지갑을 열었지만, ‘신영균은 구두쇠’라는 소문이 돌았다. 아들은 검소하고 낭비하지 않는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뒤로 통 큰 기부가 이어졌다. 2010년에는 500억 원 상당의 명보극장과 사재 100억 원이 들어간 제주의 영화박물관을 기증했고, 모교인 서울대, 명예박사 학위를 준 서강대에도 수십억 원을 기부했다. 각종 구호 성금, 탈북 학생 장학금 등에도 수십억 원을 내놓았다.

이승만 기념관 부지 기부에 대해서는 기념관 설립 추진위원회 회의에서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이라고 밝혔다. 배우 이영애가 기념관 설립에 5000만 원 기부 의사를 밝히고 비난받은 것에 대해서는 좌우 갈등 없이 대한민국이 통합되기를 바라며,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틀린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2010년 500억 원대 명보극장 기증에 대해서는 영화의 거리를 위해 아들과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의 의견을 따라 기증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배우로 사랑받았으니 그만큼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고, 돈이 많아도 기부는 쉽지 않지만 가족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2016년 탈북 학생 장학금 10억 원 기부에 대해서는 이북 출신이라 탈북자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통일과 나눔 재단에 10억 원 수표를 가져갔을 때 재단에서 놀랐던 일화를 이야기했다.

앞으로도 기부를 계속할 것이며, 남은 돈은 전부 기부하고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기부하면 그냥 좋고, 기부할수록 더 부자가 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신영균은 치과대학 졸업 후 개업한 치과는 늘 환자로 붐볐고, 영화배우로서는 300편에 출연하며 흥행 보증수표로 통했다. 극장, 빵집, 볼링장 등 사업도 성공적이었다. 그는 해외에서 영화 촬영을 하면서 본 것들을 한국에 들여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고, 극장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빵집, 볼링장 사업도 성공적이었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것이 인생의 첫 실패였다고 밝혔다.

정치에는 선거 20일 전에 중앙정보부의 반협박으로 뛰어들었지만, 600표 차이로 떨어졌다. 상대 후보의 흑색선전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고덕동에 땅을 사서 20년을 살았지만, 마지막으로 문화예술계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고 밝혔다.

그는 예술가 의료보험제도를 제도화한 것을 가장 잘한 일로 꼽았으며, 예술계와 정치 모두 좌우 갈등 없이 통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당선 전에 만났던 일화를 이야기하며, 윤 대통령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았고 꼭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영균은 어린 시절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서울대 치과대학에 입학하여 치과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배우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영화 ‘과부’로 데뷔하여 성공적인 배우의 길을 걸었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연극 무대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교회에서 성극을 하면서 박수받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성공적인 배우가 되었다.

치과 의사를 그만두고 배우가 된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으며, 다시 태어나도 영화배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덧붙였다.

신영균은 90세가 넘었지만, 여전히 뛰어난 패션 감각과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의 스타일리스트는 아내 김선희 씨이며, 평생 아내만을 사랑했다고 말했다. 아내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밝히며, 아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저녁 10시에 잠자리에 들고, 매일 점심은 누군가와 식사하며 대화를 즐긴다. 건강 비결로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을 거의 마시지 않으며, 나쁜 일은 빨리 잊어버리고 좋은 일만 생각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꼽았다.

📢 아래 지원금, 환급금들도 꼭 찾아가세요!

👉 목 어깨마사지기 BEST3 추천 가격비교 내돈내산 후기 총정리

👉 여성 갱년기 영양제 추천 BEST 5 추천 가격비교 내돈내산 후기 총정리

👉 남자 전립선 영양제 추천 BEST 5 추천 가격비교 내돈내산 후기 총정리

👉 관절에 좋은 영양제 추천 BEST5 추천 가격비교 내돈내산 후기 총정리

👉 신차, 중고차 구입한지 5년 이상이라면 무조건 환급 받으세요 자동차 채권 환급금 조회

👉보험 하나라도 가입했으면 꼭 찾아가세요 숨은 보험금 찾기

👉정부에서 도시가스비를 돌려드립니다! 꼭 신청하세요 도시가스 환급신청 바로가기

👉 인터넷, 휴대폰 쓰고 있다면 꼭 확인해보세요 통신비 미환급금 조회방법

👉 신용카드 포인트를 현금으로! 신용카드 포인트 통합조회 신청방법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