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감동적이다…” 85세 김동건이 20년 넘게 가요무대를 진행을 이어올 수 있었던 진짜 이유

<가요무대>의 최장수 진행자 김동건. 그는 일련의 이유로 가요무대 진행에서 7년간 하차했다가 2010년부터 현재까지 가요무대의 진행을 맡고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가 고백한 안타까운 사연과 올해로 85살이 된 그가 어떻게 이렇게 긴 시간동안 현역으로 활동 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김동건은 1939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모두 겪은 김동건은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라고 불릴만 한데요.

이런 혼란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그는 어느날 아나운서가 되기로 꿈꾸게 됩니다.

김동건은 차근차근 자신의 꿈을 키우다 결국 1963년 동아방송국에 아나운서로 합격하게 됩니다.

그는 아나운서가 된 후에도 뉴스가 끝난 다음 원고를 빌려 집으로 가져와 녹음기 앞에서 원고 읽기를 매일 연습했다고 합니다.

김동건은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했습니다. 그가 처음 아나운서가 됐던 시기에 대한민국은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김동건이 일하던 동아방송국은 그런 혼란한 사회분위기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했는데요.

사회와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국의 특징 때문에 종종 군인들이나 달러 장사치들이 불만을 품고 방송국에 난입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언론 보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김동건은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무려 데뷔 60년차를 맞았는데요, 많은 분들이 어떻게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자리를 유지할수 있을까 궁금해 하실 겁니다.

여기에는 아마 그의 강직함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것입니다.

우선 오랫동안 활동을 하려면 구설수가 없어야합니다.

김동건은 변화를 싫어하는 성격탓에 식당도 항상 같은곳을 가고, 의상도 늘 똑같은 것만 입는다고 합니다.

튀는 행동을 하지 않으니 구설수에 오를 일도 없겠죠. 무엇보다 그는 아나운서를 하면서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끊었다고 합니다.

<가요무대>를 오랬동안 지켜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그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가요무대>에서 하차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KBS는 정권이 바뀌고 사장이 교체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간판 프로그램의 MC교체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문제였습니다.

KBS측에서 시청자들에게 김동건 하차의 이유에 대해 그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 시청자들은 그의 하차를 교체된 정권의 실세가 조장한 일인지 확실치 않았음에도 정권에 대한 비판도 거세졌습니다.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시청자들은 김동건이 어떤 입장이라도 표현해주길 바랐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많은 중장년층 시청자들의 항의로 김동건은 <가요무대>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갑작스러운 하차 통보 후 7년이 지나서야 당시 상황을 밝혔습니다. “다 지나간 이야기라 시시콜콜하게 거론하고 싶지 않다.”

“아직 현직에 있는 후배들도 있고, 진행자 교체는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시청자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동건은 일방적인 하차통보를 받고도 시청자에 대한 예의만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편, 김동건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을 위로했던 <어게인 나훈아>의 진행을 맡았습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평소 절친으로 유명한데요, 그래서 일까요 평소 자신의 이야기를 아끼는 김동건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콘서트에서 가장 인상깊은 노래로 ‘명자’를 꼽았는데요.

노래 내용이 이북출신 피난민이 명자의 부모님께서 자신들의 부모님을 평생 그리워하다 돌아가시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김동건도 이북 출신이라는 사실을 전해드렸는데요. 그는 낳아주신 부모님을 이북땅에 두고 한번도 찾아뵙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낳아주신 부모님, 길러주신 부모님이 각각 두분씩 계시다고 하는데요.

친 어머니는 3살때 돌아가셔서 이북에 묻히셨고 아버지는 6.25 전쟁때 납북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부모님을 모두 여읜 그는 이모와 이모부를 어머니, 아버지로 알고 자랐다고 합니다.

길러주신 부모님은 한번도 친어머니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길러주신 어머니, 즉 이모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사진을 보여주며 생모의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김동건이 왜 ‘명자’에 깊이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는지 이해가 됩니다.

김동건은 자신이 50년간 아나운서를 할 수 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나운서가 높은 자리가 아니라서 그렇다 . 만약 아나운서란 자리에 권력과 돈이 따라온다면 누가 50년간 하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김동건이 그동안 돈과 권력을 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존경받는 아나운서가 될 수 있었단 생각이 듭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