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무심하지 너무 안타깝다…” 이경애 재혼한 남편과 사별 후 충격적인 세번째 결혼 발표 임하룡과의 특별한 인연

개그우먼 이경애는 1964년 생으로 1984년 연예계 대뷔하기 전까지 정말 힘겨운 삶을 살았는데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노름에 빠진 아버지가 전재산을 날린 후 부모님과 5남매는 망우동에 위치한 단칸방에서 살았습니다.

심지어 생활고가 너무 심해서 부모님이 이경애를 입양까지 보내려 했다는데요.

당시 충격을 받았지만 그녀는 마음을 다잡으며 “앞으로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존재가 되자”라고 다짐했습니다.

이후 어떻게든 돈을 벌겠다고 마음 먹은 이경애는 중학교 입학을 1년 미루고 방문판매까지 시작했는데요.

그런데 생활고보다 이경애를 더욱 힘들게 만든건 바로 술과 노름에 빠졌던 아버지였습니다.

술마신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에게 폭행을 일삼았던 눈물의 시절을 버텨낸 그녀는 돈을 벌어 성공하기 위해 1984년 개그콘테스트 시험에 도전합니다.

그 결과는 당당히 대상. 그간의 슬픔을 닦으며 화려하게 연예계에 데뷔했는데요.

당시 수상금 50만원으로 동생들 학비도 해결하고 연이어 광고도 찍으며 반지하에 살던 이경애의 가족은 집을 넓혀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실질적인 가장이었던 그녀는 가족 모두를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전성기 시절 한달에 1억원까지 벌었다니 인기가 많았던 만큼 그 수입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이경애는 그렇게 번 돈을 한번도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가 이번엔 주식투자로 모두 날려버렸기 때문인데요.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갑작스럽게 아버지는 암 판정을 받고, 어머니는 심한 간경화를 앓게 되었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던 두분 병원비가 일주일에 870만원이 나갔고 결국 남아있던 집마저 팔아야했습니다.

그렇게 5년간 병원신세를 진 부모님은 열을 차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이경애가 태국에 있었는데 당장 귀국할 수가 없어서 친한 동료 임미숙이 임종을 대신 지켰는데요.

어머니에 대해 유난히 애틋했던 이경애는 한동안 우울증으로 힘들어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팍팍했던 그녀에게 어느날 새로운 가족이 찾아왔는데요. 그 또한 파란만장 했습니다.

이경애는 개그우먼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에 첫번째 남편을 만났지만 결국 이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한 카페에서 우연히 합석하며 만난 김용선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간이 안좋아진 김용선은 전처와 낳은 큰 아들로부터 간이식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사랑 하나로 결국 2002년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이경애는 결혼 후 자신이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그녀의 나이는 마흔이 넘었고 남편은 50대 중반. 아이는 불가능하다 생각했지만 이경애는 인공수정을 결심했고 정말 어렵게 딸 김희서양을 낳았습니다.

이제 남편과 소중한 딸과 함께 세 가족이 행복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또다른 불행이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의 간병비로 모든 재산을 날리고 빈털털이가 되었지만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 남편과 아이, 그렇게 새출발을 하고싶었는데 갑자기 이경애가 암선고를 받았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었지만 알고보니 맹장염을 잘못 판단한 오진이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맹장염 수술을 마친 그녀는 두달 후 이번에는 교통사고를 당하는데요.

이때문에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고 관절이 탈골되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런에 이 교통사고는 단지 사고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경애의 남편 김용선의 건강까지 나쁘게 만들었는데요.

아내를 걱정하던 김용선이 며칠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더니 간이 급속도로 안좋아진 겁니다.

결국 이경애는 자신의 재활을 포기하고 남편의 간병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몸 오른쪽 마비 증상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 아픈 상태였음에도 이경애는 남편의 병원비를 위해 쉬지않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행사장에서 감전을 당해 몸이 공중으로 튀어올라 응급실까지 실려가는 일을 겪었습니다.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던 이경애는 오로지 남편과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렸습니다.

하지만 남편 김용선은 2013년 1월 투병 중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딸뿐이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딸아이를 잘 키워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은 왜이리도 무심한 걸까요.

지난 1990년대 초 이경애는 나이트클럽 사업을 했다가 투자금을 날린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의 실패를 거울삼아 그녀는 남편과 사별 후 다시 사업에 도전했습니다.

먼저 수제어묵 사업을 했는데 억대 매출을 올리며 반응이 너무 좋아서 즉석 떡볶이 가게까지 내게 됩니다.

그래서 ‘이경애떡볶이’가 한때 인기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큰 화제를 일으켰는데요.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모든 가게의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급기야 이경애가 갑자기 이상행동까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름아닌 페트병을 잔뜩 모으게 된 것인데요.

그 이유는 알고보니 오로지 딸아이를 지키겠다는 마음때문이었습니다.

지난해 TVN <신박한정리>에 출연한 이경애는 집에서 페트병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자 심경을 밝혔습니다.

“만약 전쟁이 나면 비상식량을 모아서 딸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비상식량을 담을 페트병을 모았는데 이거 버려야해요?”라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진행하던 신애라가 “빈 페트병이 이경애의 마음을 안정되게 만들어준 도구인 것 같아요. 안버리셔도 됩니다”라며 다독여줬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경애가 최근 반가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올해 초 TV조선 <스타다큐마이웨이>에 출연한 이경애가 현미와 대화 도중 깜짝 고백을 했는데요.

“사실 오래 만나서 사귄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결혼해서 살고 있다”라고 밝힌 것입니다.

현미가 먼저 현재 본인의 남자친구가 73세라고 얘기했더니 이경애도 그에 맞춰서 공개를 한 것인데요.

이경애는 “방송에 공개되는 걸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고 피해가 갈까봐 이야기 안했는데 현미 선배님의 말씀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이경애의 곁에 든든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으니 잘 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착하고 똑똑한 뿐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중고등학생 행복지수 전국 1등을 했던 딸은 현재 프로골프 선수가 되기 위해 준비중이라고 합니다.

골프 강사가 딸 희서에게 “너는 골프 하려고 태어난 몸매다”라고 했다는데요.

희서의 눈부신 성장도 기대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너무나 힘들게 살아온 그녀에게 큰 힘이 되어준 한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첫번째 결혼이 행복하지 않아서 이혼했던 그녀를 향해 자세한 내막도 모르는 동료들이 당시에 이상한 루머를 만들고 공격했다고 합니다.

그때 유일하게 막아준 사람이 바로 선배 개그맨 임하룡이었는데요.

동료들이 이경애에 대해 이런저런 비난을 하면 임하룡이 나서서 “니가 직접봤어? 내가본 이경애는 그런애 아니다”라고 혼냈다고 합니다.

이경애는 당시를 떠올리며 임하룡을 “내인생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은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마 임하룡도 지금의 이경애를 참 흐믓하게 바라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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