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란 곳은 아주 아주 산 깊은 시골 깡촌. 하루에 버스 한 번 볼까말까한 곳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 물려 받은 손바닥만한 밭과 다 쓰러져가는 집한칸. 농사지을 수 있는 조금마한 땅으로는 우리 가족 배 부르게 먹을 수 있는 곡식이 되지 않았지만, 아버진 천하태평이셨습니다.
대충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일을 하면되고, 하루가 멀다않고 술독에 빠져살고, 겨울이 되면 도박장을 전전하고, 화가 나면 엄마를 이유없이 때리는 것이 삶이 되어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날, 아버지와는 더이상 못살겠다며, 나를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을 하였습니다.
서울하늘 어느 달동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산동네에 단칸방을 하나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쉴 틈없이 몸 사리지 않고 일을 하셨습니다. 공예품 부업을 하면서 가게 납품을 하셨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라면은 커녕, 밥 반공기에 장아찌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초등학교를 갈려면 아파트를 지나가야 했던 나는 아파트 상가에 있는 피자집을 지날 때마다, “냄새죽이네, 한 번만 먹어봤으면” 소원이라며 그 길을 지나갔습니다. 부자들만 먹는 게 피자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피자집 전단지가 우리 동네에 아니 집앞에 굴러 다녔습니다. “엄마 우리도 피자 한 개만 먹으면 안돼?”
엄마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전단지에 눈길을 보내셨습니다. 내가 하도 졸라되니 엄마는 “얼마니?”라고 하십니다. 전단지를 들여다보니, 무슨맛, 무슨맛이라 잔뜩 쓰여 있지만, 맛 보다는 가격이 먼저 였던 나는 전단지 맨 밑 끝에 있던 치즈피자 9900원이라며 엄마에게 말하였습니다.
엄마는 지갑에서 지폐랑 동전을 보태 9900원이라며 손에 쥐어 줍니다.
그렇게 난생 처음 피자라는 것을 먹게 되었습니다.
“와! 환상적인 맛이야. 말로 표현이 안돼” 내가 피자를 너무 좋아하니까 그날 이후 엄마는 피자값으로 동전을 따로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세월은 흘러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치즈피자가 스스히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뒤도 안보고 앞만 보고 걸어왔던 20대. 바빠서 엄마랑 얼굴을 못 보는 날도 있었고 내가 자고 있음 엄마가 일 나가시고, 엄마가 자고 있음 내가 일하러 가는 생활도 있었습니다. 회사에 입사하고 달동네에서 탈출하여작지만 아파트도 장만하고, 여친도 생겼습니다.
여자친구의 요청으로 컴퓨터 포멧을 해주고 돌아오는 길, 옛날에 사먹었던 그 피자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부러 치즈피자를 한 개 샀습니다.
“엄마 피자 사왔어요. 옛날 맛이 나는지 드셔보세요”라니 “오랜만이네”
한 입 드시고는 이내 내려 놓으시더니, “옛날 없을 때나 맛있었지 너나 다 먹어라”라며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에이 우리 엄마도 입맛이 변하셨구만” 엄마는 뭐라 대꾸를 안하십니다.
남은 것을 챙겨 냉장고쪽으로 갈려는데 나즈막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달동네의 그 서럽고 서럽던 시절 먹어봤던 치즈피자가 생각이 나셨던 것 같았습니다.
한번도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나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엄마도 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