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새엄마의 간섭에 가족으로 살 수 없다며 집을 나와 전봇대에 붙어 있던 고시텔 전단지를 보고 월10만원에 밥도 준다는 고시텔 생활이 되었습니다.고시텔 원장이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자네 방 옆에 할머니가 사시는데 밤에 조금 시끄러울 꺼야. 그런데 이해해주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할머니와 인사를 하자 할머니가 반찬이라며 가지고 오셨습니다.
“남자 혼자서 반찬이나 제대로 해 먹겠어요? 맛이 없어도 사먹는 것 보단 좋을 거요 “
오징어채 무침, 호박전, 과일등등 저녁때마다 다른 반찬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밤만되면 할머니 방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고함소리가 났다, 애원하는 소리등등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구랑 밤마다 전화를 하시는 거지?’
어느날 담배를 태울려고 바깥에 나와 있는데 원장이 나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옆방 할머니때문에 시꺼럽지? 자네가 이해하게. 원래 아들이 한명 있는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안 볼라고 하나봐. 요양원에 보내자고 하는데 아들이 여기로 모신거야. 자식키워 나도 아무 소용없어 쯧쯧…”
할머니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할머니랑 나의 동거아닌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할머닌 손주 대하듯이 나를 챙겨주셨고 나는 고마움에 표현을 하자고 하면 한사코 말리며 밀쳐내셨습니다.
고시텔 생활 2년쯤 밤낮 돈을 악착같이 모으니 원룸을 얻을 정도의 돈이 생겼습니다.
기분이 좋아 고시텔로 향하는 걸음앞에 할머니가 짐을 들고 내려오셨습니다.
“학생 나 이사간다우. 잘 지내고 행복하게 살으우…”
드디어 아들 집으로 들어가시나보다 생각하고 “
할머니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할머니의 뒷모습에 대고 크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얼마 후 아들이 할머니를 찿으로 왔다면서 어디계신지 알려달라고 연락이 안되어서 찿아왔다합니다.
“제발 알려주세요. 연락이 안되어 미치겠어요”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합니다. 할머니 찿아달라고.. 잘못 했다면서..
“그렇게 걱정되면 진작에 잘 해드리지 매몰차게 할 일이 뭐가 있수? 날도 추운데 형편을 봐주겠다 월세 안줘도 된다고 하지 않았소? 겨울만 넘기게 놔두라고 그냥 사시라고 했는데 댁들은 뭐했수?
모셔 가지도 않으면서 왜 내보내라고 했수? 할머니 가신곳을 자식이 모르는데 남인 우리가 어찌 알겠수?” 원장이 야단아닌 야단을 치십니다.
아들은 잘못했다며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고시텔을 졸업하고 집을 옮겼습니다. 할머니도 잊혀지는 듯 하였습니다.
어느날 여친과 그 앞을 지나치는데 고시텔이 카페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갑자기 할머니는 찿았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