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5살의 평범한 회사원이고 혼자 살고 있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나 그리고 여동생 이렇게 네 명이 살았는데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께서 이혼을 했다.
엄마는 이혼의 원인이 아버지의 불륜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후로 나는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1년 후에 엄마는 10살 이상 차이 나는 아저씨와 재혼을 했다.
나는 갑자기 등장한 아저씨를 아버지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면서 조금이라도 친해지기 위해서 온 힘을 다했다.
그러나 엄마가 재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의 지옥 같은 생활이 시작되었다.
새아버지와 엄마는 나를 무시하고 여동생만 예뻐했다.
여동생은 항상 엄마 곁에 딱 붙어있었는데, 내가 같은 행동을 하면 엄마는 성가시다면서 버럭 화를 냈다.
부모님이 나보다 어린 동생을 더 살뜰히 보살피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마음속에 큰 상처를 받았다.
주변에 상담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나는 외로움에 거의 매일 혼자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서러움이 폭발해서 친아버지에게 보내달라고 울면서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시의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진심으로 친아버지를 만나고 싶다기보다는 엄마와 새아버지가 나에게도 관심을 둬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의 투정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내 뺨을 세게 때리고 불같이 화를 냈다.
다음에 또 친아버지에게 보내달라고 말하면 그때는 정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엄마는 나를 무섭게 노려보았고 얼굴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부터 나는 완전하게 마음을 닫았다.
학교에서 거의 입을 열지 않는 조용한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와 새 아버지의 여동생에 대한 편애는 심해져만 갔고 나는 어디에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 둘째는 보면 볼수록 예쁘네 앞으로 아이돌 가수나 모델 되는 거 아니야?
진짜야 이렇게 예쁜 아이는 어딜 가도 찾아볼 수가 없다니까.
새아버지와 엄마는 내 앞에서 보란 듯이 여동생을 더 귀여워했고 동생 역시 나를 무시하고 깔보게 되었다.
언니보다 내가 더 예쁜 건 확실하지.
언니는 못생기고 성격도 이상해서 친구도 없고 너무 불쌍하다.
동생은 나를 벌레 보는 듯한 눈으로 보면서 비아냥거렸다.
나는 우울하고 불행한 성장기를 보냈고 시간은 흘러서 대학 수험을 앞두고 있었다.
너 앞으로 진로는 결정했어? 나는 대학에 가고 싶은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가 너 등록금 내줄 돈이 어디 있냐 .
그래서 학자금 대출 알아보고 있어.
어릴 때부터 나의 유일한 즐거움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림에 집중할 때만큼은 괴로운 현실을 벗어나서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나는 대학교에서 좋아하는 그림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
너 말이야, 대학은 꿈도 꾸지 말고 바로 취직이나 해.
지금까지 키워준 은혜를 갚으라고 나는 학자금 대출로 등록금을 해결하고 따로 아르바이트해서 집에 돈도 보내면서 내 생활비도 충당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엄마는 내가 대학에 들어가는 자체를 반대하고 있었다.
내가 만약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엄마는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지를 것이다.
급하게 집을 구하기에는 초기 비용이 없었고 무엇보다 나는 미성년자이다.
당연히 나에게는 연대 보증인이 되어 줄 사람이 없었고 나는 결국 엄마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나는 집 가까이에 있는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여동생은 부모님에게 등록금은 물론 온갖 지원을 받으면서 대학에 들어갔다.
여동생이 행복한 캠퍼스 생활을 즐기는 동안 나는 밤낮없이 일하고 월급은 엄마에게 전부 강탈당했다.
그러나 내가 25살이 되었을 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 집으로 중년의 남자가 찾아왔고 엄마는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나는 멍하게 서 있었는데, 남자는 웃는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오랜만이구나 나를 기억하고 있으려나 작은아버지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고 나서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니 나는 바로 기억이 났다.
내가 어렸을 때 나를 굉장히 아껴주고 잘 놀아주던 작은 아버지였는데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친아버지와 똑 닮은 따뜻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작은아버지는 엄마에게 가볍게 목인사만 하고 우리 자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난달에 형님이 세상을 떠나셔서 그리고 상속 관련해서 전할 말이 있어 친아버지는 엄마와 이혼을 하고 외국으로 떠났다고 들었는데 거의 20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부부 소식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형님은 둘째에 1,000만 원의 유산을 남기셔서 나머지 재산은 모두 첫째가 상속받게 될 거야.
네? 저한테 나머지 재산 전부를요? 나는 깜짝 놀라서 옆을 봤는데 여동생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평소였다면 크게 난리가 나야 정상인데 여동생의 태도가 어딘가 이상했다.
그런 여동생을 보고 작은아버지는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너는 이미 알고 있었나 보구나 형님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고 작은아버지는 차분하게 진실을 말해 주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이혼 원인이 아버지의 불륜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전부 엄마의 거짓말이었고 외도를 저지른 것은 정작 엄마 본인이었다. 불륜남은 지금의 재혼 상대이고 엄마는 친아버지와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있을 때 아버지를 속이고 불륜남과의 아이를 출산한 것이었다.
친아버지는 이혼 과정에서 여동생의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로 충격적인 진실을 접하고 정말 많이 괴로워했다고 한다.
너무 놀라운 이야기에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엄마와 새아버지가 왜 그렇게까지 나와 여동생을 차별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작은아버지는 엄마에게 따지듯이 질문을 했다.
그러고 보니 첫째가 대학에 가지 않았더군요.
형님은 아이들의 대학 등록금까지 전부 계산해서 충분한 돈을 보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설마 경제적인 문제로 첫째를 대학에 못 가게 한 건 아니겠죠.
아니 그건 엄마는 당황하면서 내 눈치를 살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작은아버지가 돌아간 이후에 엄마와 새아버지는 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유산 상속받으면 전부 우리한테 넘겨 지금까지 키워준 보답을 해야지 나는 그날 밤 바로 집을 나왔다.
회사 기숙사에 들어가서 홀로서기 준비를 했고 엄마와 여동생에게 끊임없이 연락이 왔지만 나는 전부 무시했다.
그리고 기억에서 가족의 존재를 지우려고 노력하는 동안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그림 공부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최근의 여동생한테 갑자기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다.
동생은 바뀐 내 전화번호를 알아내느라 힘들었다면 다짜고짜 상속받은 재산을 나눠달라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다.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고 엄마는 건강이 너무 안 좋아져서 입원 중이야 .
나 혼자 일하면서 두 사람을 보살피는 건 불가능해 알아듣겠어?
효도하느라 고생이 많구나 너한테도 부모님이잖아.
나한테만 다 떠넘기고 너 혼자 편하게 살아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니야?
나는 이미 10년 전에 모든 연을 끊었고 가족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어.
제발 부탁이야 돈이라도 좀 보내줘 엄마가 퇴원하더라도 후유증 때문에 평생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못 할 수도 있어.
나 혼자 일하면서 두 사람이나 돌보는 건 진짜 너무하잖아.
너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잖아.
이제는 네가 전부 보답 드려야지 힘내 나는 전화를 끊고 착신 거부를 했다.
동생이 바뀐 번호를 어떻게 알고 연락을 했는지 조금 찜찜했다.
나에게 아픈 기억만 남겨준 엄마와 여동생이 불행하게 지낸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속 깊이 남아 있던 상처가 조금 치유되는 것 같았다.
친아버지의 유산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지만, 누군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는 일에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제는 극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