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과 아들 그리고 딸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아들은 중 삼이고 딸은 초등학교 사 학년이었다.
나는 초혼이었지만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 살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손으로 키웠기 때문에 아들을 향한 사랑은 딸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잃은 슬픔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고 눈물이 하염 없이 흘렀다.
그러나 아들이 울고 있는 딸을 달래주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남편이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양가 부모님들과 친척들이 도와주셔서 장례는 무사히 치렀다.
장래 마지막 날 남편의 영정 사진 앞에서 혼자 우두커니 서서 숨죽여 울고 있는 아들을 보게 되었고 나는 순간 더 이상 슬퍼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이제부터는 남편의 몫까지 책임지고 내가 아이들을 지켜야만 한다고 다짐을 했다.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남편의 보험금도 수령했기 때문에 생활에 금전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남편의 장례를 마치고 처음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편의 흔적이 가득한 공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파서 너무 힘이 들었다. 그러나 남편과 아이들의 추억이 깃든 집을 내놓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아이들과 상의 후에 계속 이 집에서 살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나와 아이들만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내가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중학생 아들은 여동생을 살뜰하게 잘 챙겨주었다.
어느 날은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엄마 저녁밥 내가 간단하게 카레 만들었어
우와 카레 엄청 좋지.
나와 동생은 먼저 먹었어 지금 카레 다시 데울까 라고 아들이 말해주었다 .
그전에 먼저 좀 씻을까?
내가 엄마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서 욕조에 물 받아놨어.
바로 들어가면 돼
고마워 엄마 그럼 빨리 씻고 올게.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나와 아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남편을 그리워하고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나는 아이들의 앞을 향해서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면서 용기와 힘을 얻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아들이 방에 틀어박혀서 꼼짝도 안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었고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들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하다가 이내 생각이 바뀐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아들이 걱정이 되었지만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공부에 대한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서 아들이 스스로 나에게 말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수일 후에 그날은 마침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던 딸의 친구 엄마가 딸을 자신의 집에서 자게 해도 되냐고 물어봐 주어서 나는 기꺼이 승낙을 했고 아들과 단둘이 저녁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저녁 메뉴를 뭘로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들이 갑자기 울 것 같은 얼굴로 이야기를 꺼냈고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가 엄마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아직 중학생이니까.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집에 있게 해줘
아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숙이고 진심을 다해서 나에게 빌고 있었다.
나는 아들의 말에 패닉 상태가 되었고 너무 당황스러워서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너가 엄마 친아들이 아니라고 너한테 누가 말했어.
나는 남편과 결혼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아들을 나의 아이라고 생각하면서 키웠고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말해준 적이 없었다 .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으니 너무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엄마 아들이야 피가 섞이고 말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
그리고 여기는 너의 집이야 그런데 너가 이 집을 왜 나가
그게 그러니까 이모가 나는 엄마 아들이 아니니까 내가 이 집에 계속 있으면 엄마한테 민폐만 끼치는 거라면서 중학교를 졸업하면 의무교육이 끝나는 거니까 고등학교도 가지 말고 어디 취직해서 일을 해야 하고 당연히 집에서도 나가야 한다고 했어.
뭐라구 너한테 이모가 그런 말을 했다고 아들은 흐느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가 어떻게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
엄마한테 너무나 소중한 너와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야.
너와 동생은 엄마의 보물이라서 엄마가 지켜줘야 하니까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는 거라구.
엄마가 너를 낳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가족이고 나는 너의 엄마야.
알겠어 ? 응
그럼 밥 먹기 전에 우선 씻고 와 엄마가 맛있는 저녁 만들어 줄게 한 번만 더 집을 나간다는 소리 하면 엄마 진짜 화낼 거야.
아들이 욕실에 들어간 사이에 나는 바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그래도 너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마침 잘 됐다.
내년에 우리 아들이 너가 사는 지역으로 대학을 들어가잖아.
근데 기숙사비가 아까워서 그러는데 너네 집에서 살게 해줘 .
언니 아들을 누구 마음대로 여기로 보내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그리고 왜 우리 아들에게 쓸데없는 말을 했어.
나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이가 성인이 되면 내가 직접 말을 해주려고 했어.
그리고 아이한테 집을 나가라는 그딴 소리는 도대체 왜 한 거야.
내가 뭐 틀린 말 한 거라도 있어 전부 사실이잖아.
아이 아빠도 이제 이 세상에 없는데 아들은 무슨 아들이야 남이나 마찬가지 아니야.
그래서 사실 그대로를 말해줬어.
야 미친 소리 좀 그만해 내 아들이 이 집을 나가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아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알기나 해 ?
나는 아들이 울던 모습이 떠올라서 언니를 향한 분노가 치밀었고 나도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이가 집을 나가야 하는 이유가 있어 .
우리 아들이 너네 집에서 학교를 다니려면 방이 있어야 할 것 아니야.
너네 아이가 내년에 집을 나가고 우리 아들이 너네 집에서 살아야지.
그래야 기숙사 비용 아끼고 식비도 공짜잖아.
너와 우리 아들은 정당하게 피가 섞여 있는 관계잖아.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해 두는데 앞으로 내 아들 건들지 마.
한 번만 더 아이에게 상처 주는 짓을 하면 나는 언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기숙사비를 감당할 돈도 없어?
그럼 학자금 대출이라도 알아보면 되잖아.
뭐라구 학자금 대출 너네 집에서 살면 전부 다공짜인데 애한테 지금 빚을 내라고 하는 거야.
너는 남편 보험금도 많이 나왔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쪼잔하게 구는 거야.
언니한테는 10원 한 장도 쓰고 싶지 않아.
남편 보험금은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남편이 남겨준 돈이야.
언니가 함부로 입에 담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가 무슨 말을 지껄여도 나는 우리 아들 짐을 너네 집으로 보내버리면 그만이야.
아이는 중학교 졸업하면 바로 집에서 쫓아내라고.
나는 더 이상 언니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고 나는 바로 친정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언니와 있었던 일을 전부 말씀드렸다.
손자를 각별하게 아끼시던 엄마는 상처받은 아이가 불쌍하다고 눈물을 흘리셨고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시면서 언니와 형부를 호출하셨다 .
나중에 엄마에게 전부 들은 이야기인데 아버지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언니는 시무룩한 얼굴로 친정에 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형부에게 언니의 만행을 전부 설명하시면서 굉장히 화를 내셨다고 한다.
자식을 대학까지 보내려면 그만큼의 금전적인 대비를 착실하게 하는 게 부모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왜 아무 죄도 없는 아이를 상처를 주면서까지 이 난리를 피우는 거야.
형부는 전혀 몰랐다는 듯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언니에게 말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대학 자금으로 따로 만들어 둔 통장이 있잖아.
언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고 한다.
당신 설마 돈 전부 어디에 써버린 거야.
3000만 원이 넘는 돈을 생활비로 쓴 거야.
여기저기 돈 나갈 곳이 많았어. 그래서 잠깐 빌린 거야.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동생 집에서 살면 전부 공짜가 되는 거잖아.
당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매달 내 월급으로 생활비는 충분하잖아.
언니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뻔뻔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뭔가 짐작이 간다는 듯 언니에게 말했다.
너 설마 아직도 예전 버릇 못 고친 거 아니지 지금도 불법 도박에 빠져서 살고 있는 거야.
아니야. 그런 거 절대로 아니야.
언니는 강하게 부정을 했지만, 누가 봐도 거짓말이라고 느껴질 만큼 당황하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자식 교육비까지 돈으로 전부 날려 먹어?
그래 놓고 불쌍한 조카를 쫓아내라고 난리를 피운 거야.
아버지는 분노를 못 참고 언니의 뺨을 후려쳤다.
언니는 아프다면서 소리를 질렀고 형부는 그런 언니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 형부는 언니에게 큰 실망을 하고 이혼을 요구했다.
부모님도 두 번 다시 언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고 연을 끊자고 선언하셨다.
언니는 허름한 원룸으로 이사를 했고 형부에게 위자료를 지불하기 위해서 일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같은데, 전부 자업자득이고 동정심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아들에게 다시 한번 나의 진심을 전했다.
너와 동생은 엄마한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야.
너는 엄마가 배 아파서 낳지는 않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엄마의 자식이고 평생 변하지 않을 거야.
다시는 이상한 생각하지 마 알겠지 아들은 안심한 듯이 눈을 깜박이면서 대답을 했다.
지금은 남편이 이 세상에 없지만, 아들을 보고 있으면 남편과 나를 계속 연결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언젠간 남편을 다시 만났을 때 당신 몫까지 힘을 내서 아이들을 지켰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