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과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키우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같은 아파트 바로 위층에 시부모님이 살고 계셨고 아주 사소한 일로도 자주 집으로 오셨다.
결혼 전에는 나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시댁과 절대로 가까운 곳에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남편이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나와는 전혀 상의하지 않고 시어머니와 함께 부동산에 가서 멋대로 신혼집을 계약하고 말았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을 했는데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부탁으로 전업주부가 되었다.
거의 매일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 현관문 소리가 들리면 시어머니가 바로 내려오셨는데 정말 너무 스트레스였다.
나왔어 밥 줘 너무 배고프다 지금 만들고 있으니까.
잠깐만 좀 기다려 뭐라고 저녁밥 준비가 왜 이렇게 늦어 너는 전업주부잖아.
하루종일 집에서 뭐하고 자빠져 있는 거야.
무슨 소리야 어머님 부탁으로 여기저기 볼 일이 많았다고 나도 방금 집에 들어왔어.
남편과 말싸움을 하고 있는데, 마침 집에 들어오던 시어머니가 현관에서 대화를 전부 들었는지 언제나처럼 잔소리를 하셨다.
너가 가사 능력이 부족한 것을 왜 내 탓으로 놀리니 굉장히 불쾌하구나.
제가 틀린 말 하지는 않았잖아요.
오늘 하루 종일 변명 따위 그만하고 빨리 밥이나 차려.
시어머니는 항상 이런 식으로 나를 시집살이 시켰는데 사실 이 정도는 얼마든지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나를 괴롭히는 동시에 손녀딸에게도 언제나 차가운 태도를 취했고 나는 아이의 상처받은 얼굴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이가 대화를 시도해도 무시하기 일쑤였고 시어머니가 아이에게 선물을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숨 막히는 환경에서도 나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있었다.
시아버지는 시어머니가 상식에 어긋나는 발언을 하면 적당히 좀 하라고 시어머니를 꾸짖어 주셨고 우리 때문에 항상 너가 고생이 많구나.
이걸로 너와 아이가 필요한 거 사려무나 손녀딸의 용돈을 챙겨주시고는 했다.
시어머니는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쳤는데 너는 정말 요리 실력이 엉망진창이구나.
우리 아들이 너무 불쌍하네 내가 만든 요리를 멋대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다.
아이 앞에서 그런 행동은 제발 그만해 주세요. 아이의 점심밥을 다시 만들어야 하잖아요.
네가 만든 거 먹어봐야 맛없어서 토하거나 배탈이 나겠지.
딸아이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쳐다보고 있어도 시어머니는 나에게 폭언을 퍼붓고 행패를 부렸다.
내가 말대꾸를 하고 같이 화를 내면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고자질을 했고 남편은 집에 와서 나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무한 반복이었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나는 시어머니에게 대드는 것조차 그만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말도 안 되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통장에 4000만 원이 있어야 하는데 왜 잔액이 0으로 되어 있어 통장에 들어있던 돈은 내가 결혼 전에 일을 하면서 필사적으로 모아두었던 비상금이었다.
나는 바로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당신 설마 내 통장에 손댔어 4000만 원 전부 어디 갔어?
내가 말 안 했었나 엄마가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저번에 내가 드렸어.
뭐라구? 너 돈은 어차피 다 내 건데 어디에 쓰든지 너가 무슨 상관이야?
당신 지금 제정신으로 말하는 거야. 지금 우리 살림에 4000만 원이라는 큰돈을 쉽게 모을 수가 없다고 게다가 돈은 내가 결혼 전에 일하면서 모은 거잖아.
엄밀히 따지자면 당신 돈이 아니라구 너 말을 왜 그따위로 하냐?
결혼하고 계속 집에서 놀고 먹는 백수 주제에 지금까지 내가 더러운 생활비로 살았잖아.
나는 계속 일하고 싶었는데, 당신이 그만두라고 강요한 거잖아.
돈은 다시 모으면 되는 거야.
당신이 매번 어머님한테 이것저것 사드리니까 당신 월급으로 저금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이라면 평생 돈은 모을 수가 없다고 나는 남편의 적반하장 태도에 너무 질려버렸고 이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나는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수면 아래에서 확실한 준비 계획을 세웠다,
우선 나는 밤 시간을 이용해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다음 주부터 가까운 병원에 야간 근무로 출근하기로 했어.
뭐라고 당신이 내가 놀고 먹는 백수라고 무시했잖아.
밤 시간에 일하는 거 상관없지 아이는 누가 돌봐 집안일은 어쩔 거야.
내가 일하는 병원에 24시간 어린이집이 있어 어차피 육아 경험도 없는 당신한테 아이를 맡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그리고 나는 친정 부모님께 모든 사실을 말씀드렸다 ,
부모님은 잘 생각했다면서 나를 격려해 주셨고 아버지는 변호사 비용을 봉투에 넣어서 주셨다.
그 후에 나는 이혼 준비를 진행하면서도 남편과 시어머니 앞에서는 평소처럼 지냈다,
시어머니에게 폭언을 들어도 조금만 견디면 해방된다고 나 자신을 다독여 주었다.
야간 근무를 지속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항상 수면 부족에 시달렸고 낮에는 여전히 시어머니의 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나 내 딸을 지키고 앞으로의 인생을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그리고 드디어 기본자금을 무사히 모았고 내 사정을 아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나는 딸과 함께 지낼 새로운 보금자리를 정했다.
그날 밤 나는 드디어 남편과 시어머니가 있는 자리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여기 이혼 서류를 작성해 남편과 시어머니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너 혼자서 애를 어떻게 키우려고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라고 어차피 꼴도 보기 싫었는데 이혼하거라,
그런데 아이는 두고 가야 할 거다, 나중에 내가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병간호를 시켜야 하지 않겠니?
남편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지만 시어머니의 경악스러운 발언에 나는 온몸이 덜덜 떨렸다,
어머님 제가 딸을 두고 갈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4000만 원은 제가 결혼하기 전에 모아둔 돈이었다는 걸 알고 계셨죠 ?
그건 순전히 저희 개인 재산이니까. 변호사를 통해서 전부 확실하게 돌려받을 예정입니다.
그냥 겁 주려고 하는 말이지? 당신과 나는 조금 있으면 완전히 남남이잖아.
당연히 돌려받아야지 오늘 당장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갈 거야.
나는 짐을 챙겨서 지긋지긋하던 그곳에서 탈출을 했다.
사실은 전날 시아버지께는 전부 말씀을 드린 상태였다.
시아버지는 이혼에 찬성하셨고 시어머니와 남편을 대신해서 고개를 깊이 숙이면서 사과를 하셨다.
나는 친정 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육아와 출근을 수월하게 병행했고 병원 업무에도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능한 변호사 덕분에 소중한 4000만 원을 무사히 돌려받았고 아무런 방해 없이 딸과 함께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혼 성립 후에 전 남편으로부터 지겹도록 연락이 왔는데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 제발 부탁이야 내가 잘못했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 우리 딸을 아빠 없이 키울 작정이야 아이가 안쓰럽지도 않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
나는 일체 상대하지 않고 전부 무시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별거 중이신 시아버지가 가끔 안부 연락을 주셔서 남편의 최근 상태를 듣게 되었는데 시어머니가 아들의 월급으로 쇼핑을 하고 사치를 즐기는 바람에 전 남편은 부족한 생활비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 같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나는 원래 전략 습관이 투철했고 간호사로 일하는 수입도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여유롭게 딸과 지내고 있었다.
게다가 근무 환경도 너무 좋아서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도 많고 쉬는 날에는 아이들과 다 같이 모여서 놀기도 하면서 정말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