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9월에 어머님 생신 있잖아. 올해가 칠순으로 알고 있는데, 생신 때 뭘 해드리면, 좋을까?
글쎄 칠순이라고 요즘 잔치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던데 그냥 가족들끼리 좋은 곳 가서 밥 먹고 용돈 드리면, 되겠지.
뭐 그래도 아버님도 안 계시고 어머님 혼자잖아.
칠순 정도는 챙겨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가 내가 나중에 엄마한테 뭐 하시고 싶으신지 여쭤볼게 동생이랑 상의해서 적당히 해드릴 수 있는 만큼 해야지 .
뭐 요즘 먹고살기도 힘든데 마냥 돈 많이 들어가는 건 힘들고 그래 어머님한테만 물어보지 말고 아가씨한테도 같이 물어봐.
둘이 같이 살고 있으니까 집에서 필요한 게 있을 거야.
칠순 잔치를 안 하시겠다고 하면, 돈으로 가전제품을 새로 사드리던지.
저번에 보니까, 우리 쓰는 빨래 건조기 괜찮냐고 물어보시던데 정도면 너무 비싼가 우리가 쓰는 거 100만 원 조금 넘을 텐데 조금 비싸긴 하지만 여유 자금으로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 다른 것도 아니고 칠순인데 정도는 해드릴 수 있지.
알겠어 내가 엄마랑 동생한테 한번 물어보고 다시 얘기해 줄게.
저는 올해로 결혼 3년 차 네 살 차이 맞벌이 부부입니다.
아버님은 제가 이 집에 시집오기 전에 먼저 돌아가셨고 저보다 나이로는 한 살 어린 시누는 재작년에 본인 결혼 생활 1년도 못 채우고 이혼당해서 시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어요.
시누의 이혼 원인은 본인 스스로는 성격 차이에 전 남편의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신호의 모습은 본인 성격 괴팍하고 말도 전혀 가려서 하지 않기 때문에, 듣는 사람 기분을 나쁘게 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훨씬 허영심이 심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시누랑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으면 대부분 본인 자랑이에요.
티비에서 해외 관광지가 나올 때마다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고 명품은 어찌나 좋아하는지 월급이 200만 원도 안 되면서 6개월 12개월 카드 할부는 매달 긁어대는 것 같아요.
지금도 집에는 각종 브랜드 명품 가방이 10개도 넘게 있고 쇼핑과 여행 때문에 과거 20대 시절 신용불량이 되었던 적도 있답니다.
시누의 결혼 생활에서도 아마 별다를 건 없었을 거예요.
두 사람 월 수입을 제가 뻔히 알고 있었는데, 항상 주말마다 여행 다니고 캠핑 다니고 백화점 가서 쇼핑을 엄청 하더라구요.
이제는 적은 나이도 아니라서 정신을 차릴 법도 한데 버릇은 전혀 고치질 못했습니다.
언니 다음 달 우리 엄마 생일 때 건조기 사줄 생각이에요. 아직 결정은 못 했어요.
칠순이시라 작게라도 잔치를 해드려야 할지 아니면 선물을 괜찮은 걸 하나 사드려야 할지 아가씨 생각은 어떤 것 같아요.
일단 있어봐요. 건조기는 좀 아닌 것 같고, 내가 엄마랑 이야기해보고 알려줄게요.
저희가 가진 예산이 그리 많지 않아서 적당한 수준에서 생각해 주세요.
돈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우리 엄마 인생에 한 번밖에 없는 칠순인데 신경 좀 써주세요.
일단 어머님께서 어떤 걸 하고 싶으신지 물어보고 알려주세요.
가까운 곳에 가족여행 가는 것도 괜찮을 텐데 요즘은 환갑 칠순 때 가족여행 많이 가더라구요.
그것도 괜찮겠네요. 우리 엄마가 여행 다니는 거 평소에 엄청 좋아하시거든요.
알겠어요. 그럼 아가씨만 믿고 있을 테니 잘 정해서 연락 주세요.
나만 믿어요. 시누 한테 맡겨놓은 것에 조금 불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조금 예산을 오버하더라도 칠순이니까 그냥 해드릴 생각이었어요.
저희도 경제적인 여유가 많지는 않았지만 이래저래 계산해보면 150만 원 정도는 쓸 수 있겠더라고요.
시댁 식구들이랑 가족 여행을 가도 돈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고 선물을 원하시더라도 정도 돈이면 다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 기다리던 시누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어머님 모시고 넷이서 3박4일 제주도 여행을 가자 하더라구요.
어머님 생신은 9월 말이었는데. 저희 집은 어차피 아버님 돌아가신 뒤로는 제사나 차례도 안 지내니까 다음 달 추석 연휴를 이용해서 3박4일 로 제주도 여행을 가자는 겁니다.
언니네한테 부담도 별로 없어서 괜찮을 것 같아요. 엄마도 제주도 여행 간 지 너무 오래됐다며 좋아하시네요.
별일 없었으면 최소 동남아나 유럽 여행은 갔었을 텐데 요즘 해외여행 다니기도 힘드니까 어쩔 수 없죠.
여행 계획은 제가 대충 짜봤는데 요즘 제주도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빨리 예약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잠시만요 추석 연휴 때 제주도를 가자고요. 저희 네 사람 항공권 가격만 70만 원 돈에 5성급 호텔은 일박에 40만 원이요.
방도 두 개씩 얻어야 하는데 그럼 3박4일 방값만 얼마예요. 대체? 아니 그럼 어떻게 해요.
제주도를 1박2일 로 갈 것도 아닌데 여행 갈 수 있는 날짜는 그날 뿐이고 우리 엄마 칠순인데 이상한 곳에서 묵을 순 없잖아요.
자꾸 그렇게 돈거리지만 말고 그냥 쓸 때 확실하게 써봐요 좀 아가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제주도 가면 렌터카도 빌려야 하고 4일 동안 놀러 다니고 먹어야 하는데 저희 돈이 얼마나 들지 상상도 안 되네요.
저는 예산을 150만 원 생각했는데 도저히 무리해요. 150만 원을 요즘 누구 코에 붙여요.
20대 때 생일파티 한 번을 해도 하룻밤에 200 300은 그냥 썼어요.
명색이 우리 엄마 칠순 여행인데 150만 원이라니 너무 염치없는 거 아닌가요.
아가씨 저희 입장도 생각해 주세요. 저도 어머님 생신 축하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고 능력만 있으면 더 잘해드리고 싶어요.
150만 원 가지고 염치없다고 하신다면 저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나머지 모자란 돈은 아가씨 쪽에서 부담해 주세요. 그러면 이대로 진행해 볼게요 .
저요 제가 왜 돈을 내요 저는 평소에 엄마 모시고 살고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히 효도하고, 있어요.
칠순 여행은 오빠랑 언니가 해드려야지 그걸 왜 저한테 보태라 말아 하시는 건데요.
누가 보면 효도하려고 일부러 결혼도 안 하고 같이 사는 줄 알겠네요.
뭐라고요. 지금 나 이혼했다고 무시하는 거예요. 그런 적 없으니까. 괜히 발끈하지 마세요.
어머님 칠순은 제가 오빠랑 다시 이야기해보고 알아서 준비할게요.
제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볼 테니까. 어디 한번 맘대로 해봐요.
저녁에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시누 욕을 한참 하더라고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만 가득 찼다면서 우리가 부자도 아닌데 어떻게 가족 여행으로 400 500씩 쓸 수 있겠냐고 그냥 신경 쓰지 말랍니다.
그래도 어머님께서 제주도 여행 간다고 하니 좋아하셨다고 하는데, 다른 걸 해드리려고 해도 마음이 불편하더라구요.
사실 어머님 생신이 9월 넷째 주에 있거든요.
시누가 가자고 했던 추석 연휴에는 모든 것이 너무 비싸니까 절대 무리고 9월 넷째 주로 다시 여행 계획을 짜봤어요.
비행기 값도 거의 반값이고 비싼 호텔 대신에 경치 좋은 펜션으로 알아봤더니, 방값도 20만 원 정도면 되겠더라구요.
굳이 방도 두 개를 잡을 필요 없이 어머님 모시고 저희끼리 간다면 한 방으로 충분하죠.
남편이랑 제가 금요일부터 연차를 쓰고 2박3일 로 제주도 여행 계획을 다시 잡았더니, 먹고 쓰는 돈까지 15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겠더라고요.
어머님에게 제가 직접 말씀드렸더니, 정말 좋아하셨고 저도 기쁜 마음으로 항공권과 숙소까지 예약을 마쳤습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시누가 잔뜩 화가 나서 연락하더군요. 언니 설마 나 빼고 셋이 제주도 가기로 한 거예요. 나는 가족 아니야?
어떻게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어 그때도 얘기했지만, 저희 예산이 150만 원밖에 없어서요.
아가씨가 전 같이 따라오고 싶으면 아가씨 돈으로 항공권 예약하고 숙소도 따로 잡아요.
진짜 내가 뭐라 한마디 했다고 치사하기 이럴 거예요. 알겠어요.
항공권은 내 돈으로 알아서 예약할 테니까. 나도 같이 가요.
저희가 예약한 펜션이 한 방에 성인 세 명까지만 같이 잘 수 있더라구요.
숙소도 예약해야 되고 여행하는 동안 아가씨 먹는 음식 값도 따로 내야 돼요.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언니 왜 이렇게 쪼잔하게 굴어요.
제가 예산이 너무 부족해서 그래요. 아가씨는 생일파티 때 200만 원 300만 원씩 우습게 쓴다면서요.
그정도 돈 쓰실 수 있으면서 어머님 칠순 때는 왜 쪼잔하게 이러세요.
언니가 일부러 나 멕이려고 이런 계획 짠 거죠.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엄마한테 얘기해서 나도 간다고 할 거야.
하고 싶은 대로 해보세요.
저는 그럼 바빠서 이만 시누가 칠순인데 왜 자기가 무임승차를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돈이 없으면 입이나 다물고 있지 시누가 뭐라고 하던 말든 저희는 계획대로 진행할 거예요.
어차피 예약도 전부 세 명으로 해놓고, 시누한테 쓸 돈 있으면 그냥 제주도 가서 맛있는 거 하나 더 사 먹을래요.
비록 시어머니 칠순 때문에 가는 여행이지만 저도 제주도 가본 지가 오래라서 살짝 기대되고 설레는 마음도 있더라구요.
시누가 개차반이라 그렇지 시어머니는 정도는 아닙니다.
연세가 있으시지만 시누보다 훨씬 말 더 잘 통해서 같이 여행 가는 것에 부담도 없어요.
꼴 보기 싫은 인간 빼고 우리끼리 간다니까 더 기분 좋습니다.
시누한테 제가 따라오지 말라고 한 적 없는데 정말 자기 비행기 티켓 하나 끊을 돈이 없어서 못 따라오나 봐요.
만약 같이 가더라도 정말 시누 몫의 비용은 아무것도 내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저런 소리까지 듣고 돈 내주는 허구는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