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기억은 또렷하지 않지만 그 중 기억나는 한가지는 어릴 적 아버지가 나와 어머니를 버리고 갔던 것이였습니다.
우리 애를 생각해서라도 가지 말라고 붙잡는 어머니를 내동댕이 치고 나가버린 아버지.
그 덕에 30대가 된 지금까지도 남자를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연애를 해본적이 손에 꼽았습니다.
몇번 했던 연애도 별로 좋은 기억이 되질 못했습니다.
식품 공장에 다니고 있는 나는 어릴적 단칸방에서 지내며 한푼 두푼 아끼는 어머니를 보았기에 감히 대학교에 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못배운 사람이 돈을 벌려면 공장에 취직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것이 나의 행복이었기에 함께 돈을 모아 아파트로 가는 것이 나의 꿈이였습니다.
어느날 길을 가던 중 빵 냄새가 나를 이끌었고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빵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앙금빵과 식빵을 고르고 줄을 서 있는데 뒤에서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저기 정말 죄송한데 첫눈에 반했습니다 번호 좀 주실 수 있나요…”
정말 당황스러웠다. 누군데 처음 보는 나에게 대뜸 고백을 하는 것일까.
“아뇨 죄송합니다. 처음 본 사이에 이러시는 거 불쾌하네요.”
거절을 하고 계산을 한 뒤 황급히 빵집을 나왔다.
하지만 그 남자는 나와 같은 동네에 살았던 것인지 공원에서, 마트에서 계속해서 마주쳤고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며 다가왔다.
결국 나는 그 남자에게 번호를 줄 수 밖에 없었고 연락을 이어가다보니 그 남자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연애를 많이 해봤던 것은 아니였지만 과거와는 다른 느낌이었고 이 사람이라면 결혼을 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방심을 해서인지 만난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임테기에 두줄이 나오고 말았다.
놀란 것도 잠시 그도 나와의 미래를 꿈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다.
“선호씨 나 할말이 있어…”
“무슨 일이야?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사실 요즘 생리를 안하는 것 같아서 임테기를 해봤는데 두줄이 나왔어. 임신한 것 같아”
“뭐라고? 확실한거야?”
“별로 기뻐보이지 않네. 난 우리의 아이라면 선호씨도 정말 좋아할 것 같아서 얘기한건데…”
“아..아니야. 안기쁘긴 너무 놀라서 그렇지. 정말 행복한걸. 내일 병원가서 한번 더 자세하게 검사해보자.”
우리는 함께 산부인과에 갔고 결과는 당연히 임신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하기로 했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그래 반갑다. 임신을 했다고?”
“네 어쩌다보니…”
“임신을 했으니 결혼은 허락하겠지만 아버지 없이 큰 너가 무슨 애 교육을 제대로 시키겠니.
2년정도 여기 살면서 이것저것 배워라”
“네 알겠습니다. 아이와 선호씨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 없어요”
정신없이 결혼 준비를 하던 중 친아빠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에게 찾아왔었다.
그 전부터 잘못했다고 제발 내 얼굴 한번만 보여달라고 어머니에게 사과하고 있었고 어머니가 내가 결혼한다고 하니 그제서야 연락처를 알려주었다고 했다.
나에게 찾아와 용서를 빌고 이제라도 아빠 노릇을 하고 싶다고 말한 뒤 명함 한장을 주고 갔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명함을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그전처럼 아빠는 없는 것이다 생각하며 살았고 2개월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급하게 준비해 하객도 몇명 없는 조촐한 결혼식이었다.
각오했던 것보다 시집살이는 힘들지 않았고 시어머니는 나를 배려해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사업을 하느라 바쁘다며 새벽에 들어와 잠깐 자고 가기 일쑤였고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점점 늘어났다.
그러다가 결혼한지 한달쯤 되었을 때였나 잠깐 장을 보고 온 사이 다른 여자와 함께 선호씨가 집에 와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다.
“선호씨 오늘은 일이 별로 안바빴나보네. 그 옆에 여자분은 누구야?”
“너랑 만나기 전부터 사귀고 있던 사람이야. 이제 그만 우리집에서 나가줘야겠어”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결혼까지 했는데!”
“아직 혼인 신고도 안해서 아무런 법적 문제도 없잖아. 아이 양육비는 두둑하게 챙겨줄테니까 그만 나가줘. 아이가 생겨서 너랑 한번 잘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그래. 너희 집안하고 우리 집안하고 수준차이가 너무 나잖니. 선호는 사업하는 애인데 결혼도 비즈니스적으로 해야된다.”
“어머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다 알고 계셨던거네요. 저 이렇게는 절대 못나가요”
이 집안에서 더러워서라도 못나간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고 남편과 시어머니는 나가라며 나를 밀치기 시작했다.
그때 서서 버티다 넘어지게 되었고 배가 아파왔다.
119에 실려간 나는 유산이 되었고 몸과 마음 모두 비참해져 어떻게 해서든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와 살던 그 집에 돌아가 몸을 추스르고 다시 일을 시작한지 두어달쯤 지났을까 전남편 카톡 프사에 청첩장 사진이 올라왔다.
복수만 생각하고 있던 나는 결혼식에 가 깽판을 치기로 했다.
결혼식장에 가니 내 결혼식과는 다르게 화려하고 하객도 정말 많았다.
신부의 드레스를 찢을까 전남편이 입장할때 뛰어가 내가 겪었던 일을 알릴까 고민하고 있던 와중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미정이? 미정이 너가 여기는 무슨 일이니? 여동생이 결혼한다는 소식 듣고 왔구나!”
“여동생이라니요? 제 개인적인 일로 온거에요.”
그곳에는 그때 친아빠라고 찾아왔던 사람이 있었다. 알고 보니 전남편하고 결혼하던 그 여자는 내 이복 동생이었다.
어떻게 복수할까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친아빠에게 임신부터 쫓겨난 것까지 말했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 쓰레기 였단 말이야? 나한테 싹싹하게 잘하길래 믿고 허락한건데. 내 큰딸 울린 쓰레기에게 작은 딸까지 줄뻔 했구나 말해줘서 고맙다. 내가 알아서하마.”
그렇게 결혼식이 시작됐고 신부 입장을 할때 신부 없이 친아빠만 입장을 했다.
그리고는 전남편에게 다가가 주먹으로 얼굴을 날렸다.
“너같은 쓰레기에게 내 딸을 줄 수는 없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장인어른. 갑자기 이렇게 주먹으로 치시다니요!”
“너가 내 큰딸을 유산시킨것도 모자라 결혼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고 집에서 쫓아냈다며 이미 다 들었다.”
“네? 큰딸이라뇨? 설마…”
“그래 내 큰딸이 바로 미정이다. 전 와이프의 딸이지. 이 결혼은 없던 것으로 하세”
결국 결혼은 파토가 났고 알고보니 친아빠의 하청업체의 대표가 전남편이었다.
그 후 결혼식에서 사업파트너와 거래처 지인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소문이 안좋게 난 전남편은 사업도 쫄딱 망하고 그 큰 집을 팔고 시어머니랑 둘이 시골로 이사갔다고 들었다.
나는 친아빠에게서 연락이 계속 왔지만 무시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곧 엄마와 함께 아파트 한 채 마련해 이사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꿋꿋히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