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유행어와 매끄러운 진행솜씨로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국민 MC 신동엽에겐 씁쓸한 과거가 있었다고 합니다. 가끔 여러 매체를 통해 연예인들의 빚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연예인들은 큰 인기를 누리면 한 번에 많은 돈을 거머쥐는 만큼 빚의 규모도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특히 하는 일이 잘 안 풀거나 망하고 큰 빚을 진 사람에게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연예계에도 ‘마이너스의 손’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바로 신동엽입니다. 그는 2번의 사업 실패를 거쳐 마이너스의 손으로 거듭났습니다.
1971년생 올해 나이 52세인 신동엽은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겸 MC입니다.
2020년대의 국민MC 중 한 명으로 특히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MC들의 활약이 대단했던 예능 춘추전국시대에 김용만, 김국진, 이경규, 남희석, 이휘재와 함께 가장 두각을 나타낸 MC였습니다. 신동엽은 1992년부터 2005년까지 기쁜 우리 토요일, 남자셋 여자셋, 김원희 신동엽의 헤이헤이헤이, 김용만과 신동엽의 즐겨찾기 등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개그맨들 중 두드러지는 커리어를 쌓아갔습니다.
이후 개인사로 인해 상당한 슬럼프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에 와서 다시금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정상급 MC로 본인의 영역을 확고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특히 예나 지금이나 저급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웃을 수 있고 방송의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드는 성인풍의 개그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만의 독보적인 영역으로, 이 부분에서는 적수가 없는 방송가 역대 원톱으로 평가받습니다.
한 마디로 자신만의 시대를 가져본 적이 있던 1인자급 MC 중 한 명이자 현재까지도 최정상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몇 안 되는 MC입니다.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 모두에서 활약 중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톱 MC 중 하나.
김구라의 말에 의하면 ‘현재 예능 MC와 패널들을 먹여살리는 장본인’. 신동엽이 전성기 때 방송국에서 치고 빠지고 하면서 몸값을 한껏 올려놨고, 지금 그 가격을 기준으로 해서 몸값이 책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1,000만 원도 받는 사람이 드물던 시절 마의 벽이라고 일컬어진 5,000만 원의 벽을 깨버린 MC였습니다. 후에 자신이 세운 기록인 5,000만 원의 벽을 깨고 최초 1억 원을 받는 예능계 MC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여파로 시들시들해진 인기를 가진 개그맨들이 많이 예능계 MC쪽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첫 번째로 시작한 사업은 바로 엔터테인먼트입니다. 그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던 2004년 자신의 이름을 딴 DY 엔터테인먼트를 창업해 사업가의 길로 나섰습니다.
김용만, 유재석, 이혁재, 노홍철 등 당대 스타들을 데리고 사업을 시작해 주목받았습니다. 이른바 ‘네임드 연예인’이 많아 SM엔터테인먼트 급의 회사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유재석을 제외하면 이후에 모두 물의를 일으키고 활동을 잠정 중단한 적이 있는 멤버들입니다.
신동엽은 맡고 있던 프로그램들까지 연달아 하차하면서 사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DY 엔터테인먼트의 간판 MC였던 유재석, 신동엽과 절친한 사이인 강호동이 그의 공석을 채우면서 흔히 말하는 유강체제가 완성되었습니다. 그 정도로 신동엽은 당시 인기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러나 사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신동엽의 능력 부족은 아니었습니다.
동업자가 신동엽을 배신하면서 사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55%에 달하는 주식을 팬텀엔터테인먼트에 넘겨 1대 주주였던 신동엽이 경영권을 잃게 됐습니다.
그는 이를 복구하려고 애썼지만, 되려 횡령 혐의로 피소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신동엽은 이후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새로운 사업에 듭니다.
이 두 번째 사업이 신동엽을 빚더미에 앉게 만든 주범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말도 이 사업을 통해 듣게 됐습니다.
신동엽은 2008년 다이어트 신발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신발 사업은 제품을 제대로 출시하기도 전에 쫄딱 망했다고 합니다. 브랜드 이름은 아이젝스(IXEX).
당시 언론은 해당 브랜드에 대해 ‘세계 최초로 완충 수단(스프링)을 이용한 다이어트 슈즈’라고 치켜세웠습니다.
2008년 8월 대구에 첫 매장을 내고 명동, 춘천, 상암, 화정역 등에도 가맹점을 연이어 냈습니다. 심지어 해외에도 진출했습니다. 중국 상하이, 북경에도 점포를 냈습니다.
당시 언론에 따르면 신동엽의 신발 사업은 창업 및 프랜차이즈 분야 검색 순위에서 약 35% 점유하는 등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고.
당연히 성공할 줄 알았던 사업은 한순간에 고꾸라집니다. 2011년 아이젝스 가맹점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입니다. 신동엽은 이들로부터 가맹점 가입비 관련 소송을 당하게 됩니다. 당시 이수만이 그에게 여러 가지 충고를 해줬었는데, 신동엽이 설마 하는 심정으로 반쯤은 흘려보내다가 사업을 말아먹은 이후에 “형 그 때 좀 강하게 말해주지 그랬어…”라고 했다는 안습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연이은 사업 실패로 무려 80억 원의 빚을 지게 됐습니다. 엄청난 원금 외에도 이자만 한 달에 2,000만 원을 낼 정도로 심각한 경제 상태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서인지 몰라도 2013년부터 지상파/종편/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10개가 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그리고 2014년 1월 8일, 용감한 기자들 녹화 현장에서 공식적인 빚은 다 갚았으나 아내가 모르는 비정기 빚이 있어서 몰래 비자금을 마련할 거라는 농담을 했습니다.
이처럼 금전적인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2014년 봄 개편 이후에도 여전히 10개에 가까운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로 계속해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신동엽의 설명은 “전성기 때 방송을 그만두고 다른 일(사업)을 하고 싶어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이제야 진정한 방송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며, 다시는 사업 등의 딴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바쁘게 사는 중)”. 방송에 막 복귀하고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는 김승우의 질문에 “사업 실패 후 ‘내가 그동안 너무 내 능력을 과신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앞으로는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는 코미디언으로만 기억되고 싶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말빨로 돈을 버는 코미디언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쌓아올린 이미지를 가지고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버는 사업에 자연스럽게 엄청난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 ~ 2000년대 중반을 대표하는 최고의 MC였던 신동엽이였지만, 2000년대 후반에 부각되기 시작한 무한도전, 1박 2일, 패밀리가 떴다 등의 리얼 버라이어티에 적응하지 못하며 한동안 부진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버라이어티 서너 개는 꿰차고 다닐 만큼 안정적인 진행 능력을 자랑합니다.
특히 SBS의 효자 프로그램 중 하나인 TV 동물농장은 2001년 프로그램이 첫방송할 때부터 다른 MC들은 영입과 하차를 반복할 때에도 본인만은 지금까지 유일하게 20년 넘게 쭉 자리를 지켜 오고 있습니다.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MC가 된 것도 바로 이 동물농장 프로그램을 맡으면서부터입니다. 사업한다고 다른 방송들에서 하차했을 때도, 사업 실패 후 1년 정도 방송을 잠시 쉴 때에도 동물농장만큼은 계속 출연했습니다.
SBS TV 동물농장 2주 방영분을 1회 스튜디오 촬영으로 인해 시간이 많이 들지않았습니다. 그리고 출연료도 적고 본인이 TV 동물농장에 애정이 많아 하차를 안하고 끝까지 안고 갔던건데 결과론적으로 신의 한수가 되었습니다.
현재 신동엽은 돈을 꾸준히 모아 부동산 투자로 크게 성공해 220억 원 상당의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