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무심하지…” 84세 김지미 전재산 다 탕진하고 의식회복을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근황이 전해졌다.

한국 영화계에 살아있는 전설이자 파란만장한 남성 편력 때문에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 불리는 배우 김지미는 당시 한 감독이 그녀를 보고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예쁠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만큼 당대 최고의 스타이자 그야말로 미녀의 대명사였습니다.

또한 보수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장부 소리를 들으며 화통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그녀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있는 걸 잘안다. 그런데 살아보니 대단한 남자가 없더라”며 결혼의 고수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연이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 못해 아들을 떠나보내고 그리고 보통의 여자라면 절반의 삶조차 감당하기 어려웠을텐데 살고 헤어질때마다 팔자가 그렇게 센 여자가 어딨는지 본인의 인생이 불행이라 고백하기도 했는데요.

그녀는 친척언니가 운영하던 명동 다방에 놀러 갔다가 웬 검정 고무신을 신고 들어온 괴상한 인상의 남자로부터 ‘영화에 출연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이 남자는 김기영 감독으로 당시 김지미를 보고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예쁠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광화문 근처 그녀의 집까지 찾아와 배역을 제안했고 이후 집안 사람들과의 논의 끝에 결국 배역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김지미는 열여덟 겨울에 데뷔해서 9개의 영화가 흥행했고 그리고 그다음해 스무 살 때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열두살 연상의 노총각인 영화감독 홍성기와 갑작스럽게 결혼하게 됩니다.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홍감독이 본인에게 끈질기게 ‘결혼하자’ 그러니까 어린 나이에 그럼 결혼해야 되는 건가보다 싶어 솔직히 아무 경황도 없이 사랑이라는 감정도 제대로 모르고 결혼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남편 홍성기는 영화 촬영으로 늘 바쁘고 그리고 그녀 역시 일주일에 한두번 집에 들어갈까 말까 하는 상황이 되자 결국 이 무렵에 김지미는 남편이나 가정을 중요하게 보지 않고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니다보니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채 이혼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혼의 직접적인 사유는 세간에 알려진 대로 최무룡과의 연애 때문이기도 한데 당시 그녀가 첫 번째 결혼 후 최무룡과 같은 영화사의 전속배우가 되면서 남편 홍성기는 볼 시간이 없고 잘생긴 최무룡과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늘 촬영 현장에 앉아 서로의 속상한 얘기 같은걸 털어놓다보니 어느새 정이 들고 말았습니다.

당시 최무룡도 유부남에 아들 최민수까지 있었는데요. 당시 위자료까지 주게되는 화제의 사건이 되기도 했는데요. 20대 여배우가 이 정도의 사건에 연루되면 사실 한국에서는 거의 은퇴나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그녀는 사건 후에도 변함없이 배우로서 큰 사랑을 받게 됩니다.

두 사람은 단순한 간통을 넘어 1남 1녀를 낳으며 최민수에게 이복형제를 만들어 주었고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들은 돌이 지난날부터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그녀가 최민수를 잠시 맡아 기른 적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훗날 최민수가 성장한 후에도 김지미를 어머니처럼 모셨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최무룡은 김지미와 재혼 후 영화배우를 넘어서 어느날부터는 감독과 제작에도 손을 대기 시작하는데 그리고 그럴 때마다 김지미가 사비를 털어서 지원했지만, 안타깝게도 거의 대부분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최무룡의 계속되는 영화 흥행 실패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채 1969년 두 사람은 결국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최무룡과 헤어진 후 이번에는 11살 연하의 강한남자 나훈아와 만나게 되는데 그리고 당시만 하더라도 연상연하 커플이 드물었기 때문에 또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두 사람은 혼인신고는 한 적이 없고 1976년부터 82년까지 동거한 것으로 사실혼 관계였고 그리고 원래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고 같이 다니는 사이일 뿐이었으나 언론의 오해로 교제 중이라고 보도가 나자 이에 김지미가 오기가 생겨 정말로 교제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김지미는 나훈아와 오랜 동거에도 결혼은 하지 않았는데 이후로는 나훈아와의 관계가 연인보다는 스승과 제자에 더 가까워 당시 나훈아의 재능을 높이 평가한 그녀가 예절과 서예 등 다방면에 걸쳐서 글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나훈아 역시 훗날 ‘김지미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 준 사람이다’라고 고백했지만 두 사람은 6년 가량의 동거 끝에 또다시 각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다 1991년 대망의 3번째 남자이자 3번째 남편인 의사 이종구를 만나게 되었고 그리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연예계쪽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편, 당시 이정구가 김지미의 어머니에게 참 잘했는데 그래서 어머니 역시 의사 사위를 두면 당시에 좀 더 오래 사실걸로 생각하셨는지 그녀가 조금만 관심을 보여도 어머니가 그렇게 자꾸 떠미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네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껴안기도하고,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게 건전한 가정인데 그러나 의사 남편과 결혼한 뒤로는 항상 네, 그러세요. 다녀왔습니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라며 격식만 차리다 보니 거리감만 생기고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몹시 피곤하게 살던 그녀는 그때 자신이 만약 이 30대였다면 진작에 이혼했을텐데 6명이나 되는 손자 손녀들 때문에 장작 11년이나 참고 산 뒤에야 뒤늦게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본인이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하지만 이번만은 왜 진작 이혼을 안하고 11년을 끌었는지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 있어 후회를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은 사람만 보고 그사람과의 관계가 편안한지 봐야한다며 자신이 수많은 결혼생활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많은 이혼과 재혼을 반복했는데요 남은여생을 혼자만의 여유를 찾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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