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계의 디바 김용임. 그녀는 이미자, 김연자, 주현미 와 함께 정통 트로트의 계보를 잇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지만 놀랍게도 20년이 넘는 무명시절을 거쳐야 했습니다.
김용임은 ‘날 때부터 가수’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찍이 딸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꾸 노래와 춤을 시켰다고 하는데요.
김용임은 그때는 아버지가 시키는 게 싫었지만 지금은 감사하다며 자신이 가수가 된 것은 아버지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아버지의 지원과 탁월한 재능으로 6살 때부터 베이비 가수로 활동한 김용임은 하춘화, 오은주 의 뒤를 이은 인기 어린이 가수였는데요.
이후 경기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해 성악을 배우고, 국악도 2년동안 배우며 탄탄한 발성법을 익히게 됩니다.
그리고 1984년 마침내 KBS 신인가요제에 참가한 그녀는 장려상을 수상하며 가수로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인기있는 어린이 가요 출신, 신인가요제 장려상이라는 화려한 데뷔까지 김용임의 미래는 탄탄대로와 같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많은 이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험난한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김용임의 생각과 달리 나오는 음반마다 실패해서 CD는 폐기처분되었고, 김용임을 불러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상실감에 꿈을 잃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가수 활동을 포기한 그녀는 결혼을 하면서 완전히 가수의 길을 접고 사랑하는 아들도 낳으며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앞날에 남아있던 불행은 가수로서의 실패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김용임은 전업주부로 아이를 키우며 다른 부부들이라면 으레 하는 말다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다툼히 심해지자 그녀는 홧김에 이혼하자는 말을 해버렸고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동의했습니다.
이후 김용임은 아이를 생각해 홧김에 한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남편은 단호하게 이혼을 서둘렀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김용임과 남편이 말다툼을 했던 당시 남편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고 불륜 상대와 새살림을 차리기 위해 김용임과 이혼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김용임은 이 사실을 이혼한 이후까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다른사람이 생겼으니 이혼하자고 했으면 배신감이 덜했을 수도 있었는데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에게 배신당한 김용임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하지만 김용임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이혼 후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다시 노래를 해보라며 권유를 하였고 그녀는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여 바로 메들리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그런데 그 앨범은 휴게소에서 대박이 났고 김용임의 20년 무명생활을 청산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그렇게 가수로 승승장구 하던 김용임은 지금의 남편 시성웅을 만나게 됩니다.
가수와 매니저로 만나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어 미래를 약속했지만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김용임은 애딸린 이혼녀였고 시성웅은 초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시고모부님이 “45살이 될 때까지 한번도 여자를 데려온 적이 없는 애가 데려온 걸 보면 확실한 여자일 거다.” 라고 가족들을 설득했고 두 사람은 결혼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후에도 김용임의 수난시대는 계속되었는데요. 그녀의 시누이는 무려 7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참고로 시성웅은 11남매 중 막내아들로 집안에서 황제라고 불릴 정도로 누나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남편을 아끼는 시누이가 한명도 아니고 무려 7명이나 있는 집으로 시집을 갔으니 김용임이 얼마나 시집살이를 겪었을지 알만합니다.
김용임은 과거 무명 시절 자신이 너무 힘들었기에 무명 후배들을 위해 1년에 한번 열리는 자신의 팬미팅에 노래를 정말 잘하고 유망해 보이는 무명 가수들을 초대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그 팬미팅 무대에 초대된 무명 신인가수 중에서 임영웅도 있었죠.
즉 그녀는 그의 진가를 일찌감치 알아보고 당시 무명가수였던 임영웅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입니다.
훗날 이 인연을 바탕으로 <사랑의 콜센타> 에서 김용임이 “임영웅 내가 키웠지” 라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기회가 절실했던 무명 트로트 가수, 그리고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한 선배 가수 이들의 인연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한편 이 드라마가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 때문입니다.
첫번째, 두 사람은 긴 무명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김용임은 데뷔 후 빛을 보지 못하며 가정주부로 살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도 발성연습은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기에 ‘트로트 메들리’로 순식간에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임영웅도 마찬가지로 힘든 무명시절을 거쳐 현재의 대세 트로트 가수가 된 그의 스토리는 너무나 유명하죠.
두번째, 두 사람은 무명 시절을 기억하며 항상 겸손한 자세로 살아갑니다.
김용임은 자신처럼 무명생활을 이어가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자신의 팬미팅 무대를 열어두었고, 양로원 봉사를 비롯하여 현재 다양한 방법으로 봉사활동을 하고있다고 합니다.
임영웅도 마찬가지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활발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트로트 계의 정상에 올라가 있다고 볼 수 있는 두 사람이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대단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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