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엄마는 58세에 혼자가 되셨습니다. 아버진 갑자기 쓰러지셔서 손 볼 사이도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아버지 대신 집안 대소사를 신경쓰라며, 큰 집 팔아 큰오빠에게 맡겼으나, 무슨 일만 생기면 나몰라라하고, 아직 엄마가 계신데 형한테 왜 줘 버렸냐며, 작은 오빠의 원망을 다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큰오빠의 배신으로 형제들 모임횟수도 줄어들고, 사이도 나빠지는게 보이니, 엄마의 표정은 점점 안좋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떻게든 사이를 좋게 해 볼려고 자식들이 손 내밀면 돈을 풀었으나 처음으로 되돌아가진 않았습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미안하다 자식이 많으면 뭐하니 다들 내 몰라라하는데, 너라도 없었으면 어떡할뻔했니”
“내가 엄마 볼 면목이 더 없구만, 잘 살지 못해서 미안하고 우리들 잘 키웠쟎아. 큰오빠도 지금 자리 잡느라고 힘들겠지. 우리 여덟 다 효자쟎아. 엄마 자식들 너무 걱정마시고, 애인이나 만들어서 즐기며 살아”
“애인은 무슨, 니 아빠같은 남자가 있으면 한번 생각해보고”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나한테 “나 친구가 생겼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데 가끔 등산도 같이 간다”
“어쩐지 우리엄마 등산 자주 가신다 했어, 어떤 분이여?”, “개인병원 의사인데 사별한지 5년 되었대”
“그럼 이번 엄마 환갑때 초대 해. 내가 언니, 오빠들한테 말해놓을께”
이렇게 인연이 되는 것인가 생각하며 호텔 연회장에서 처음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친구분은 멋지고 센스도 있으시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겨 금방 정이 드는 것 같아 너무 좋았습니다.
친구분 아들들은 혼자 계신 아버지가 재혼한다면 완전 찬성한다고 하는데, 저의 작은 오빠가 방방뛰며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신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버지 불쌍하다고, 그 나이에도 남자가 필요하냐면서 자식 손주보면서 살면되지 창피하지도 않으냐고, 형은 빨리 엄마 모시고 가라고, 아버지 제사는 어떻할거냐며 방방 난리입니다.
작은오빠의 말도 안되는 괘변에 다른 형제들은 자리를 피하며 “그럼 니가 엄마 모시면 되겠네”하며 다 도망가기 바빴고, 내가 오빠한테 엄마 인생 끝까지 즐겁게 행복하게 해 줄 자신있는냐며 욕을 퍼붓고 있는 나를 엄마가 막습니다.
“그만해라, 이런 꼴 볼거면 없던 일로 할란다”
그리고 해가 여러번 바뀌고 어느날, 술이 잔뜩 취해 올케와 싸웠다고 작은 오빠가 전화를 했고 가지말라는 나를 뿌리치고 오빠집으로 가신 엄마. 다음날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얼마나 놀랐던지..
날이 추워 새벽에 수도가 얼까봐 수도꼭지를 틀러 나오셨다 미끄러져 머리를 심하게 다치셨고, 늦게 발견하여 병원에 모셨지만, 혼수상태의 엄마가 되어 이제 옛날의 엄마를 볼 수없게 되었으니, 지푸라기가 어디에 있으면 잡고 싶었으나 그런 기회가 오질 않았습니다.
여덟형제 모두 처음에는 눈물짜고 하루가 멀다하고 중환자실 들락하더니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깨어날 가망이 없다하니 하나 둘 발걸음이 줄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면회시간을 지키는 사람은 엄마의 친구밖에는 없었습니다. 아저씨는 엄마를 애기 다루듯이 팔, 다리를 주무르면서 “김여사 빨리 일어나요. 등산갔다오면서 먹었던 국밥도 먹으러가고, 파전에 막걸리도 한잔하러가고, 봄되면 꽃놀이도 가야지요. 빨리 일어나서 같이 갑시다”
하지만 병원에서 더 이상 해 줄게 없다며 집으로 모실것을 얘기 합니다. 평생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엄마를 우리 형제들이 모두 외면하면서 서로 미루기 시작합니다. 옛말에 병이나면 부모는 죽을때까지 자식을 거둔다하였지만 열 자식 부모 못 거둔다는 말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형제들 모두 큰오빠가 당연히 해야 된다는 표정을 합니다만 큰올케는 못 모신다고 못을 박아버리고, 큰오빠는 올케가 안된다하면 못한다고 합니다. 엄마 재혼을 반대한 작은오빠도 맞벌이라고 안된다합니다.
장가 안간 막내는 그저 울기만 합니다. 오빠들이 “여지껏 너랑 같이 살았으니 니가 하면 되겠네”라고 합니다.
의료지식이 없는 나도 두렵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꽂고 계셔야하니, 선뜻 대답이 안나옵니다. 결국은 내가 해야된다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형제들이 밉습니다. 죽이고 싶을만큼..
“저 내가 한마디해도 될까요?” 언제오셨는지 이 더러운 꼴을 다 보고 계셨나봅니다.
“내가 김여사와 재혼말을 꺼냈을때 김여사가 이러더군요. “아직 자식들은 내가 필요한가봐요. 자식들이 필요없다고 하면 갈께요”라고 했어요. 이젠 모두 엄마가 필요없는것 같군요 근데 난 저렇게 누워있는 사람이라도 숨만 쉬고 있는 김여사가 필요한데 나한테 맡겨주세요. 내가 내병원에 모실께요. 병원이 더 편할겁니다”
그 말에 형제들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둘째오빠가 통곡을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퇴원을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아저씨께 창피했나봐요. 자식들 잘 못 키워서…
“엄마 우리엄마 살아계실때 안 좋은 것랑 먼저 가버리신 아버지도 잊고, 이 자식들도 잊으시고, 마지막까지 엄마를 이뻐해주신 아저씨를 기억해 주고, 멋있게 사랑하다 왔다고 만 기억해요..”
자식이 병이나서 기저귀를 차고 있다해도 부모는 자식을 버리지 않으시지만, 자식들은 과연 기저귀를 찬 부모를 돌 볼 수 있으려나 다시 한번 뒤 돌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