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5살이고 오빠는 29살이었다. 우리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기 전까지 힘든 시절을 보냈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가 혼자서 우리를 키워주셨다. 아버지는 경찰이셨는데 잔업은 물론 휴일 출근까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빠가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내가 친구 집에서 늦게까지 놀고 있으면 항상 오빠가 데리러 왔고 같이 장을 봐서 오빠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오빠는 언제나 다정했고 나에게는 엄마 같은 존재였다. 오빠가 성인 되어서 처음 여자친구가 생겼을 때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 지금까지 나를 보살피고 집안일에만 신경 쓰던 오빠가 드디어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빠는 1년 동안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오빠와 새언니는 우리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고, 나는 가끔 놀러 가서 새언니와 수다를 떨었다. 새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나와 대화가 잘 통하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새언니와 함께 앞으로는 행복한 날들만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오빠로부터 전화가 와서 받았고 상대방은 오빠가 아닌 모르는 사람이었다.
휴대전화 주인의 가족분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휴대전화 주인이 길에 쓰러져 있어서 일단 구급 신고는 바로 했는데 가족분도 오셔야 할 것 같아서요 거기가 어디인가요? 나는 온몸이 덜덜 떨렸는데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오빠는 본인의 집 앞에 있는 공원 입구 쪽에서 쓰려졌고 우리 집에서도 가까웠기 때문에 나는 구급차보다 먼저 도착했다.
오빠가 휴대전화 긴급 연락처에 나를 등록해 놨고 길 가던 분이 오빠를 나에게 전화를 주셨던 것이다. 나는 오빠를 보자마자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오빠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의식이 없었다. 나는 공황 상태로 오빠를 일으키려고 했네 전화를 걸어주신 분이 옆에서 나를 말렸다. 바로 구급차 올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죠! 나는 하염 없이 눈물이 흘렀고 머릿속은 온통 새하얘진 상태였다. 오빠는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이송되었다.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의식이 전혀 없는 혼수상태였고 결국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오빠의 상해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었는데 아버지는 피해자의 친족이라는 이유로 수사에서 배제되었고 아버지는 찢어지는 가슴을 움켜잡고 눈물을 흘리셨다. 오빠는 후두부 가격을 당해서 출혈이 상당했는데 범행 현장 주변의 보안 카메라가 없었고 목격자도 없었다. 오빠가 발견된 공원은 근처에 큰 공원이 생기면서 관리가 되지 않았고 풀이 무성한 상태로 방치되어서 시야가 좋지 않았는데
길을 가던 행인에게 발견된 것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수사는 난항이었고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로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오빠의 사건 이후로 새언니는 큰 충격을 받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되었다. 내가 집으로 방문해서 현관 문고리에 과일이나 새언니가 좋아하는 간식을 걸어두고 오면 고맙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그렇게 생사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 역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매일 오빠를 병원에 갔다. 오빠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반년이 지나 있었다. 그동안 새언니는 조금 안정을 되찾고 병원에 얼굴을 내보이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아예 상태가 안 좋아졌다 눈을 뜨지 않는 오빠를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고통스러웠고 매일 눈물을 흘리고 무력감을 느꼈다
어느 날 오빠의 병실에서 과호흡으로 괴로워하는 나를 간호사님이 발견했고 신경정신과 진료를 권위 해 주셨다 나는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하면서 오빠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나는 너무 괴롭고 힘들었지만, 오빠가 의식을 되찾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서 8개월이 지났고 담당 회사는 아버지와 새언니 그리고 나를 호출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상태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회복될 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반년 이내였다면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높았습니다만 1년이 지나버리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선택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기적적으로 의식이 회복되어도 심각한 후유증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수 있다고도 했다. 나와 아버지는 참담한 기분이었는데. 새언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 예전에 연명치료에 관한 특집 방송을 남편과 함께 티브이로 본 적이 있어요. 그때 남편은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연명치료는 하고 싶지 않아 치료비가 너무 아까워 우리 집은 원래 부자도 아니고 돈은 오히려 남겨진 사람들이 사용했으면 좋겠어. 저도 남편 의견에 동의했어요. 그리고 사실 이제 통장 잔액이 바닥을 보이고 있어요. 지금 이대로는 끝이 보이질 않아요.
금전적인 문제라면 치료비는 내가 부담할게요 나는 오빠를 계속 기다리고 싶어요. 오빠가 깨어나기까지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도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아요. 나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말했는데 새언니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사실은 남편과 이혼하고 싶어서 변호사 상담을 다녀왔어요. 누워만 있는 남편을 보면 마음이 너무 괴롭고 희망이 없어요. 이제는 남편에게 벗어나서 편해지고, 싶어요.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이야기하셨다 아들은 아직 젊으니까. 나는 연명치료를 당연히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 병원비는 전부 내가 해결할게. 위원에 관해서는 본인이 정하는 일이니까.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구나 오빠 의견은 듣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이혼하겠다고요. 그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요 의식이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나는 더는 버틸 수 없다고요.
새 언니는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말씀대로 이혼에 대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 잘못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하는 오빠가 너무 불쌍했다. 그리고 새언니가 오빠는 절대로 회복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 것 같아서 나는 슬프고 화가 났다. 정말 미안해요. 아버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여전히 남편을 사랑해요. 그래서 남편이 더 미워지기 전에 그만하고 싶어요. 나와 아버지는 새언니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빠의 연명치료는 계속되었고 나는 변함없이 매일 병원에 가서 누워있는 오빠에게 어릴 때 고마웠다. 일 그리고 회사에서 화났던 이야기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아무 반응 없는 오빠를 보면서 자주 울컥하고 많이 울기도 했는데 이제는 어느덧 익숙해져서 편안하게 오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었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하고 1년 정도 되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오빠가 깨어났고 나와 아버지는 놀라운 거 기쁨에 오열하고 말았다. 아직 의사소통은 불가능했지만, 나와 아버지를 알아보고 의료진의 말에 반응한다. 나는 새언니에게도 연락을 했고 바로 다음날 오빠를 보러 병원으로 왔는데 이혼 절차는 아직 진행 중으로 성립 전이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 지금이라도 새언니가 마음을 바꿔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오빠는 의식이 돌아왔지만, 후유증이 남았고
회복의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그러나 오빠와 눈을 마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버지와 나는 너무 행복했다. 오빠는 앞으로 한참 더 안정을 취해야 했고 사건 당일에 대한 진술이 가능한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직 경찰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오빠가 눈을 뜨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아버지와 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평소처럼 오빠를 보러 병실에 들어가는데 새언니가 먼저 와 있었다.
나는 반갑게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새언니는 손에 작은 주사기를 들고 있었다. 오빠는 새파랗게 질려서 벌벌 떨고 있었고, 나는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느끼고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새언니는 재빠르게 주사기를 등 뒤로 감췄지만, 아버지는 빛의 속도로 새언니의 팔을 움켜쥐고 주사기를 빼앗았다. 말을 꺼냈다. 사실 아프다고요. 아버지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순간 오빠가 의식을 회복하고 나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했어. 여자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순간적으로 설마 오빠를 다치게 한 범인이 새언니라는 것인가? 생각하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에게 제압당한 상태의 새언니는 오빠를 보면서 악을 쓰기 시작했다. 이게 전부 당신 탓이잖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 오빠는 공황 상태였고 새언니는 자리에서 경찰들에게 연행되었다.
오빠는 의사소통이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온 힘을 다해서 사건 당일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날 오빠는 새언니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집에서 부부 싸움을 크게 했다고 한다. 당시에 오빠는 배신감과 분노의 치를 떨었고 새언니에게 가족들과 회사에 전부 폭로하겠다고 소리를 질렀는데 새언니는 이성을 잃고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면서 손에 흉기를 들고 오빠를 위협했다고 한다.
오빠는 집 밖으로 나와서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결국 새언니가 쫓아와서 근처에 있던 벽돌로 오빠를 쳤다는 것이었다. 경찰서에서 새언니는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자백했다. 병실에서 아버지에게 빼앗긴 주사기에는 독극물이 들어있었고, 자신의 범행이 발각되는 것이 두려웠던 새언니는 의식을 회복한 오빠를 해칠 계획이었다. 새언니는 불륜 상대와 만남을 지속해 왔고 오빠와 이혼을 하고 합칠 생각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오빠의 생명보험 수령인이 새언니로 되어 있었는데, 만약 아버지와 내가 오빠의 연명 치료를 포기했다면, 새언니는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는 결과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오빠는 처음 의식을 되찾고 깨어났을 때 새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안심했다고 한다. 의사 표현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이미 경찰에 잡혔다고 생각을 했는데 다음 날 병실에 찾아온 새 언니를 보고 경악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 이틀 지나서 간단한 단어를 말할 좋겠어. 저도 일부러 사실을 감추었다고 했다.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다려줘서 고마워 오빠는 자신을 구해준 것은 아버지와 나라고 말해 주었고 나는 그동안의 시간들이 떠올라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새 언니는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죄질이 무거워서 가벼운 형량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새 언니가 평생 후회와 절망 속에서 살았으면 좋겠어. 저도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오빠는 6개월에 걸친 재활을 거치고 혼자 외출할 수 있을 정도 회복이 되었다. 아버지와 나는 오빠와 함께 유럽 여행을 가려고 준비 중이다. 그리고 나는 내년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예비 신랑과 오빠가 사이 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