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이번에 사진 올린 거 봤어요. 요즘 오빠랑 같이 캠핑 자주 다니시네요.
밖에서 자는 건 딱 질색이라고 하더니만 그러게요.
저는 진짜 벌레도 싫고 밖에서 자는 건 질색인데 오빠 따라서 자꾸 가다 보니까, 이젠 주말에 캠핑 안 가면 제가 먼저 서운해요.
부부끼리 같은 취미 공유하면 좋은 거죠. 그건 그렇고 언니 다음 주말에도 혹시 캠핑 가요?
왜냐하면, 제가 다음 주말에 서울에서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거든요.
언니네 캠핑 가면 제가 집에서 하루 자고 가도 될까 해서요. 이번 주말에는 집에서 쉬기로 했으니까.
다음 주에는 갈 것 같아요. 오빠랑 이야기해서 확실하게 정해지면 다시 말해줄게요.
저희 있어도 우리 집에서 자고 가도 괜찮으니까. 다음 주말에 편하게 와서 하루 자고 가요.
진짜요? 방값 하루 굳었네 고마워요 언니.
작년에 결혼한 저와 남편은 서울에서 맞벌이를 하며 지내고 있어요.
시댁에는 저보다 세 살 어린 시누가 있는데, 아직 독립을 안 하고 지방에 있는 시부모님과 같이 사는 중이었습니다.
시누는 결혼 생각은 당장 없는지 남자보다는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는 걸 더 좋아했어요.
그전에도 서울에 약속 있다며 놀러왔다가 우리 집에서 한 번 자고 내려간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자고 간다고 연락이 왔을 때도 별 생각 없이 오라고 허락해 주었죠.
저희가 없는 빈집에 들어와서 자고 가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겨우 하룻밤 자고 가는 건데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겠나 싶은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약속한 다음 주 토요일이 되었고 남편과 저는 토요일 오전 일찍 캠핑 준비를 마치고 1박2일 밖으로 나와 있었어요.
시누가 혼자 집에서 먹을 수 있게 냉장고에 음식들도 채워놨고 알아서 하룻밤 잘 놀다 가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날저녁 저한테 연락이 오더라 있었구요.
언니 오빠랑 재미있게 놀고 있어요?네 여기 별도 많고 오늘 날씨도 아주 좋아요.
아가씨는 집에 들어왔나 보네요. 네 방금 들어왔죠 근데 제 친구가 갈 곳이 없다고 해서 같이 왔는데 조용히 잠만 자고 가도 되죠.
오늘 저랑 같이 서울 올라온 친구인데 얘 혼자 밖에서 자라고 할 수가 없어서요.
친구요?알겠어요. 어쩔 수 없죠 냉장고에 맥주랑 안주도 좀 있으니까. 친구랑 둘이서 한잔하고 자요.
역시 우리 새언니가 최고야 근데 나 딱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맥주 마시면서 티비로 영화 하나만 보면 안 돼요?
알겠어요. 결제 비밀번호는 공공공공이에요. 재미있게 놀다가 내려가요.
오늘 집에 같이 있었으면 맛있는 거라도 해줬을 텐데 미안하네요.
괜찮아요. 둘이서 영화나 보다가 조용히 자고 내려갈게요 오빠랑 재미있게 놀아요.
시누의 친구까지 우리 집에 온다는 건 제 예상에 없었지만 그래도 조용히 맥주나 마시고 영화만 보다가 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 둘이서 하룻밤 동안 뭘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요. 조금 어지럽히고 갈 수는 있겠지만, 나중에 제가 치우면 그만이고 일단 캠핑장에서 남편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때쯤 천천히 철수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냉장고에 있는 맥주와 소주 술이란 술을 다 꺼내서 먹고 장식장에 들어있던 남편이 아끼는 양주까지 꺼내서 싹 다 마셔버렸더라고요.
우리 시누가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인 줄은 진작 알았지만 이건 여자 둘이서 먹을 양이 아닌데 좀 너무하다 싶었어요.
소주가 네 병에 맥주가 여섯 캔 그리고 뜯지도 않은 남편 양주도 한 병 다 마셨더라고요.
음식도 뭘 그렇게 시켜 먹었는지 1회용 배달 플라스틱 용기가 거실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자세히 살펴보니 떡볶이의 족발까지 야무지게도 먹었습니다.
집안은 초토화가 되어 있었고, 제가 신우자라고 작은 방에 이부자리를 깔아놨었는데 저희 부부가 쓰는 안방까지 들어와 침대에서 자고 간 흔적이 보였습니다.
당연히 저는 집꼬라지 보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남편도 자기가 아끼는 양주가 텅 비어 있으니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더라고요.
절대로 여자 두 사람이 먹고 갔다고 생각할 수 없는 양이었는데. 떡볶이에 족발까지 다 먹고도 모자랐는지 라면도 끓여먹고 싱크대에 냄비째로, 그냥 넣어두고 저희가 전날 냉장고에 넣어뒀던 소세지나 크레미 같은 음식들도 다 꺼내서 먹어버린 상황이었죠.
남편이 일단 자기가 집 청소하겠다고 해서 같이 설거지도 하고, 치우고 있다가 너무 짜증이 솟구쳐서 더는 못 참고 시누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아가씨 어제 친구랑 둘이 있다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둘만 있었는데,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저희 집 상태 뻔히 알면서 그런 말이 나오세요.
술은 있는 대로 다 꺼내서 먹고 배달 음식이랑 아가씨 먹은 건 왜 하나도 안 치우고 가셨는데요.
아니 언니가 편하게 있다가 가라면서요 이렇게 잔소리 들을 줄 알았으면 그냥 친구랑 방 잡을 걸 그랬네 앞으로는 치사해서 안 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오빠 양주는 왜 꺼내서 다 마신 건데요. 지금 오빠가 화가 많이 났거든요.
여자 둘이서 어떻게 많은 술을 다 마셔요 술을 먹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언니 진짜 쪼잔하게 왜 이래요.
나 옆에 친구도 있는데, 쪽팔리게 이럴 거예요. 저희 엄마한테 다 이야기할 테니까. 나중에 우리 엄마랑 얘기하세요.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전혀 없고 시어머니한테 이르겠다는 소리나 하고 있는데, 진짜 옆에 있었으면 머리통을 한 대 꽉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진정도 안 되고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찾다가 문득 시누가 티비로 영화 보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서 대체 뭘 봤는지 결제 내역을 찾아봤는데 한 편에 만 원짜리 19 금영화를 6편이나 결제해서 받더라고요.
아니 무슨 여자들끼리 이런 걸 보나 싶기도 하고, 보통 영화 좀 보겠다고 하면, 적당히 할인하는 영화로 한 편, 정도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희 시누가 개념이 없어도 정말 너무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남편도 또다시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었지만 워낙 시부모님이 시누를 감싸고 돌았기 때문에 저희가 어떻게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하던 청소나 마저 해야겠다. 싶어서 설거지 다 하고 배달을 음식 쓰레기들 다 정리해서 남편이랑 같이 분리수거하려고 집을 나오는데 그때 마침 앞집에 사시는 아주머니가 외출을 하시려다가 저희랑 딱 마주치고 말았어요.
평소에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지냈는데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으니 뭔가 어색하고 뻘춤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아주머니가 저희한테 갑자기 어젯밤 우리집에서 집들이를 했냐고 묻는 겁니다.
저희는 캠핑을 나가 있었고, 시누가 우리 집에 와 있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아주머니 표정이 요상하게 바뀌면서 새벽 늦게까지 남자들 목소리와 여자들 웃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옳거니 싶었습니다. 일단 아주머니께 죄송하다 다신 그런 일 없을 거라 사과드리고 빠르게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뛰어 올라왔어요.
그리고는 시누에게 다시 연락을 시작했습니다. 아가씨 어제 정말 친구랑 둘이 왔다 간 거 맞아요.
아니 몇 번을 말해요. 내가 그럼 친구랑 이따가 가지 집에 누굴 불렀겠어요.
아니 아가씨가 남자들이랑 집으로 들어온 걸 봤다는 사람이 있어서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언니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네 증거라도 있어요.
증거는 이제부터 찾으면 나오겠죠. 뭐 집에 도둑 들었다고 하고 아파트 경비실에 가서 CCTV 보여달라고 할까 싶어요.
그런데 어젯밤에 무슨 영화를 그렇게 많이 봤어요.
붉은 악마 말죽거리 복상사 무슨 영화 이름이 이래요?
아니 내가 보려고 한 게 아니고 친구가 본다고 해서 잠깐만 본 거예요.
내가 뭘 보던지 말던지 그걸 언니가 왜 뒤져봐요. 기분 나쁘게 아가씨가 시어머니랑 이야기하라고 해서, 지금부터 시어머니랑 전화 통화하려고요.
진짜 많이도 봤네 남사스러워서 차마 영화 제목을 내 입으로 말도 못하겠어요.
어머님한테 전화드려서 어제 아가씨가 우리 집에서 남자들이랑 영화도 보고 술도 마셨다고 말씀드릴게요. 언니 잠깐만요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일단 영화는 내가 하나 보라고 했으니까. 나머지 5편은 입금해 주시고요.
오빠 양주 맘대로 꺼내 먹은 건 새로 사서 보내주세요.
시어머니한테 말씀드릴지 말지는 앞으로 차차 생각해볼게요.
알겠어요. 지금 바로 입금할게요 우리 아빠가 알면 나 죽어요.
진짜 말 안 듣고 얄밋던 시누도 자기 아빠가 무섭긴 한가 보더라구요.
올해로 벌써 27인데 언제 철이 들려고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또 찾아올까 싶어 현관문 비밀번호도 바꿔버렸고 다신 우리 집에 사람 없을 때 찾아오지 못하게 할 거예요.
사람이 호의를 베풀면 얌전하고 조용히 놀다가 갈 것이지. 이런 식으로 사람 뒤통수를 치다니 진짜 용서할 수가 없네요.
영화 값 5만 원은 바로 송금 받았고 다음에 시댁 내려오면 자기가 양주 한 병 사서 주겠다는데 원래는 정신적 피해 보상까지 뜯어내야 하지만 이쯤에서 참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시누의 영화 결제 내역만큼은 잘 보관해 놨다가 언제 한번 또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하면 명절의 친척들 다 모인 자리에서 시부모님에게 바로 보내드리던지 하려고요.
나이 먹고 온 가족들 앞에서 망신 한번 당해봐야 정신 차리고 안 그럴 것 같아요.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7eOd8p3YifQ&t=55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