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집 주소가 1010 동 2202호 맞니? 여기가 다 거기서 거기 같아서 도저히 집을 찾기가 쉽지 않네,
네 맞아요. 그러니까 저희가 월말에 내려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뭐하러 여기까지 올라오셨어요.
너희들 8월에 결혼하고 내가 어떤 집에 사는지 한번 구경도 못 했잖니.
어차피 김장김치도 좀 줄 겸 집 구경 좀 하고 가려고 온 거다.
어머님 지금 어디쯤이신데요. 제가 모시러 나갈 테니까 어디쯤 계시는지 위치라도 알려주세요.
여기가 정문 좀 지나서 1001동이랑 1002동 사이인 것 같은데, 도무지 1010동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네.
단지가 좀 넓어야지.. 알겠어요. 더 움직이지 마시고 그냥 거기 계세요.
제가 지금 내려갈 테니까 그리고 오늘 너무 늦었으니 저희 집에서 저녁 드시고 하루 주무세요.
주무시고 내일 제가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 없다. 나는 김치만 주고 알아서 내려갈 테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아니에요. 어머님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냥 내려가시면 저희가 면목이 없죠.
남편도 조금 있으면 퇴근하고 집에 도착할 거예요.
일단 지금 내려가니까 자리에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알겠다. 여기에서 꼼짝 안 하고 있으마 2년 연애한 남편과 결혼한 건 지난 8월이었어요.
아버님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편이었고 원래 결혼하기 전에 제 주변 사람들이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 외동아들과는 결혼하지 말라는 소릴 하더라구요.
하지만 저희 남편이 스무 살 대학 들어갔을 때부터 혼자 자취했고 직장생활하는 지금까지 10년 넘게 어머님과 남편이 따로 살았기 때문에 별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죠.
실제로 어머님 댁에서 저희 신혼집에 오시려면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세 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결혼하고 두 달 넘도록 집에 오신 적은 없으셨어요.
대신 저희가 차로 내려가면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갈 수 있어서 남편과 함께 주말에 자주 찾아뵙고 얼굴을 비췄었죠.
하지만 자식이 결혼해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셨는지 서울에 잘 올라오신 적도 없는 어머님께서 저희 집 주소만 어렵게 찾아오셨더라고요.
마침 제가 그날 병원 가느라고 반차를 내고 집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꼼짝없이 복잡한 아파트 단지에서 길을 잃어버리실 뻔했어요.
예고도 없이 올라오셔서 조금 당황했지만, 그래도 집으로 모셨고 저녁을 먹고 하루 주무시게 한 뒤에 다음 날 버스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아가 너가 터미널까지 태워다 준 덕분에 집에 잘 도착했다.
니들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눈으로 보니까, 너무 좋더구나 어머님 잘 들어가셨어요.
다음에는 올라오시기 전에 미리 말씀 한번 주세요. 제가 터미널로 모시러 갈게요.
말이라도 정말 고맙구나 집도 넓고 커튼이며 인테리어 전부 너무 예뻐서 마음이 놓인다.
우리 새아가 살림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야. 아니에요. 과찬이세요.
아직 많이 부족하고 어머님한테 배울 점도 많은 것 같아요.
말도 어쩜 이렇게 이쁘게 하니 그런 덴 너희 집에 아직 애도 없는데 방이 세 개나 되던데 집이 너무 크고 횡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글쎄요 저는 이게 큰 건지 잘 모르겠던데요. 그냥 평범한 33 평 아파트라서요.
내가 볼 때는 집이 너무 횡하고 이쁘게 꾸며 놓긴 했는데 사람 사는 냄새가 안 나더라.
그러셨어요. 뭐 내년 말이나 후년쯤에 저희도 아이가 질 생각이라서요 세 식구 살게 되면 그때는 좀 낫겠다.
그래 그 말도 맞다. 아무튼 내가 며느리 덕분에 잘 놀고 왔네,
네 다음에 또 놀러 오시고 편히 쉬세요. 뭔가 쎄한 느낌은 있었지만 그때는 별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넘어갔어요.
어차피 멀리 떨어진 어머님이 저희 사는데 간섭하실 수도 없을 거고. 한번 저희 집으로 찾아오려면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고생해야 하니까 자주 오시지도 못할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래도 자꾸 어머님의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며칠 시간이 지나니까 다 잊어버렸습니다.
어머님 이야기를 다 잊어버렸을 때쯤 갑자기 남편이 제게 이상한 말을 하더라구요.
여보 출근 안 늦었어? 집에서부터 뛰었더니, 아슬아슬하게 지하철 탈 수 있었어.
진짜 이럴 때는 지하철역에서 가까이 사는 게 다행이야 그냥 내가 출근하는 길에 태워주면 됐는데 내 차 타고 출근하지.
아침에는 당신도 바쁜데 괜찮아 어차피 우리 회사 들렀다 가려면 돌아가야 하잖아.
일단 지하철만 타면 회사까지는 금방이라서 괜찮아 그래도 출근 시간에 사람들도 많고 불편하잖아.
다음에는 그냥 시간 늦을 거 같으면 내 차 타고 가 그런데 여보 나 할 얘기가 좀 있는데,
얘기? 무슨 얘기??지난달 말에 우리 엄마가 김치 가져다 주면서 하루 주무시고 가셨잖아.
그러셨지 왜 어머님이 또 놀러오고 싶으시대 ?아니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 엄마가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우리 집이 둘이서 살기에 너무 큰 거 같다 하시더라고.
어머님은 나한테도 소리 하시던데 대체 왜 그러실까 빨리 애 낳으라고 압력 넣으시는 거야?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우리 엄마가 서울 올라와서 같이 살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시더라.
뭐? 어머님이 우리 집에서 사시겠다고 응 우리 집에 어차피 방도 두 개가 비니까 작은 방에서 지내면서 집안 살림도 해주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밥도 챙겨 주시겠대.
나중에 우리 아이 낳으면 엄마한테 맡겨두면 될 테니까.
그것도 이득 아닌가? 이득은 무슨 이득이야 우리 결혼한 지 석 달도 안 됐는데 어머님 모시고 같이 살겠다고?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당신 퇴근하고 돌아오면 집안일 아무것도 할 필요 없고 맨날 엄마가 차려준 집밥 먹을 수 있잖아.
우리 지금은 서로 시간 없어서 배달 음식을 자주 먹는데 돈도 아끼고 건강도 챙기고 일석2조 아냐?
아니 여보 밥 때문에 어머님이랑 같이 살자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나는 퇴근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집에서 시어머니 눈치 보고 살아야 하는데 나는 절대로 싫으니까 합가 이야기는 앞으로 꺼내지도 마.
자기야 우리 엄마가 당신 얼마나 예뻐하시는지 알잖아 시집살이 시키고 그럴 분 아니야.
그거야 가끔 한 번씩 얼굴 보니까 그런 거고.
막상 어머님이랑 같이 살기 시작하면 나도 그렇고 어머님도 그렇고 서로에 대해서 감정이 안 좋아질 게 뻔한 일이야.
당신이야 상관없겠지만, 나는 절대 아니라구 그래도 나도 우리 엄마 혼자 시골에 사시는 거 마음 안 좋고 가족은 다 같이 모여서 부대끼고 사는 것도 맛이라고 생각 안 해?
어떻게 맨날 당신 좋은 일만 하려고 해 진짜 아침부터 화나려고 하네.
집안 살림을 누가 손대는 것도 싫고 어머님 참견이나 도움 받고 싶지도 않아.
더 이상 이 문제로 이야기하지 말자 아니 그럼 내가 우리 엄마한테 뭐라고 하냐?
같이 살 수 있겠다고 좋아하시던데 처음부터 안 된다고 했어야지.
난 모르겠으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 엄마가 엄청 기대하고 있을 텐데 내가 그런 말을 어떻게 하냐?
난 몰라 못해 아니 당신은 지금 당신 어머니 속상한 것만 중요해? 내 기분은 생각도 안 해주는 거야?
어차피 우리 엄마도 아니니까 알아서 하던지 말던지 해 난 진짜 신경 안 쓸 테니까 어머님 연락 오는 일도 없게 잘 말씀드려.
모르겠다 일단 엄마한테 안 된다고 이야기할게 이제 결혼한 지 겨우 석 달째고 혹시 몰라서 아직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은 상태예요.
그런데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어머님을 모시고 살자 하니 제가 너무나 황당하더라구요.
만약 남편이 결혼 전에 어머님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얘기를 했었으면 이 결혼 안 했겠죠.
아침부터 저런 이야기를 들어서 너무 기분 안 좋았는데, 그날 오후에 어머님으로부터 또 연락이 오는 겁니다.
아가 내가 아까 우리 정환이한테 들었는데 너가 나랑 같이 살기 싫다 했다고? 지금까지 내가 눈치 주거나 못해 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너가 나를 그렇게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어머님 저는 그런 게 아니라요 나는 그냥 다른 사심 없고 밖에서 일하는 아들이랑 며느리 뒷바라지 해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네가 그렇게 질색하고 싫어할 줄은 몰랐지.
어머님 저희한테 신경 써주시는 건 정말 감사한데 제가 마음만 받을게요.
집안일은 제가 알아서 잘 할 수 있어요. 너는 진짜 눈치가 없는 건지 내가 이 정도로 이야기했으면 어머님 죄송해요. 하고 앞으론 제가 모시겠습니다라는 소리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네 ?제가 왜요? 귀한 집안 외동아들 장가 보내놨더니, 밥도 제대로 안 차려줘서 맨날 라면 먹고 짜장면 배달 시켜 먹기나 하고 어머님 저도 나가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밖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 하고 저도 힘들어요.
그래서 너가 지금 다 잘했다는 거냐? 시어머니가 이야기하면 잘못했다는 말을 먼저 했어야지.
나를 무시하고 이겨 먹어서 뭐 하려고? 아니 어머님 제가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잖아요.
됐다. 내 아들이 여자 보는 눈이 없어도 이 정도로 없는 줄 몰랐다 너 같은 며느리는 필요 없으니까 당장 이혼해.
네 ?이혼이요? 너가 지금 나한테 대드는 꼴 보니까, 내 아들이 얼마나 너 같은 불여시한테 잡혀 살지 안 봐도 뻔하다.
괜히 남의 집 아들 등골 빼먹지 말고 여기서 이혼하고 각자 살아.
진짜 어이가 없네 제가 이혼하라고 하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어머님 모시고 살겠다고 할 줄 알았어요?
뭐야? 어머님 말씀은 바로 하셔야죠 어차피 혼인신고도 안 했으니까 이혼도 아니에요.
그리고 신혼집은 저희 부모님이 해주신 거라서 어차피 이 집에서 어머님 아들만 내쫓으면 끝이니까 저는 아쉬울 거 하나 없거든요.
아니 난 그런 의미로 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혼하라고 하셨으니 당장 그렇게 할게요.
오늘 집에 가면 남편보고 짐 싸서 나가라고 할 테니까. 어머님이 데리고 살면서 밥 챙겨주세요.
아니 아가 잠깐 내 말 좀 들어봐라 결국 그날 저녁에 남편과 크게 싸우고 내 집에서 나가라고 했어요.
자존심은 있었는지 어떻게 시어머니한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냐면서 오히려 저한테 화를 내더라구요.
내 친정에서 얻어준 집에서 왜 내가 시모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원래는 적당히 이야기하고 다신 이런 일 없도록 확답받고 끝내려 했는데 남편이 끝까지 자존심 부리는 바람에 이미 집에서는 쫓아냈고 우리 관계도 여기에서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제가 사람을 잘못 봐도 크게 잘못 봤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기 엄마가 중요하면 엄마랑 살지 저랑 왜 결혼했는지 모르겠네요.
친정 부모님이 신혼집 해주시면서 혼인신고는 1년 정도 살아보고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말 듣기를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