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말에 너네 오빠 상견례 하는 거 알지? 너무 늦지 않게 내려와 처음 인사드리는 건데 너도 같이 가야지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주말에는 정말 시간 빼기 힘들어 호텔에서 일하니까 주말에 손님이 가장 많이 온단 말이야.
나중에 오빠 결혼식 할 때는 미리 휴가 낼 거니까 상견례는 나 없이 그냥 해 뭐 대단한 일 한다고..
니 오빠 상견례를 안 와? 너 그거 사돈댁에 엄청 예의 없이 행동하는 거야.
내 사돈인가 오빠가 결혼하면 하는 거지 왜 나한테 자꾸 뭐라 그래?
나도 회사에서 사정이 있고 요즘은 정말 바쁘기 때문에 주말에 쉬는 건 무리야 그러니까 너도 오빠처럼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회사를 갔어야지.
여자애가 무슨 호텔에서 일한다고 내가 난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너 얘기를 못 해.
너 그러다가 결혼이나 하겠냐? 아니 내가 하는 일이 뭐 어때서 그래 여기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잘 살 테니까. 내 걱정 말고 엄마는 오빠나 신경 써.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집안 행사 때 오지도 않으면서 니가 언제 딸 노릇 제대로 한 적이나 있냐? 엄마한테는 내가 말을 말아야지.
저는 올해로 32 살이고 서울에 있는 한 5성급 호텔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멋진 호텔에서 일해보는 것이 꿈이었고 지금 저희 직업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위로 네 살 많은 오빠가 하나 있는데, 오빠는 그냥 평범한 사무직 회사원입니다.
저희 부모님에게는 오빠는 항상 말 잘 듣고 착한 아들이고 부모님들의 자랑이죠.
반면에서는 완전 골칫덩이에 부모님의 말을 안 듣고 속 썩이는 아픈 손가락입니다.
처음에 호텔에서 일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도 여자가 무슨 호텔에서 일을 하냐고 혼사길 막히고 싶냐며 화를 내시더라구요.
저희 부모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한 거 전혀 아니고 전문적인 서비스 일을 하는 거라고 아무리 설명드려도 끝까지 화만 내셨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그냥 부모님이 뭐라고 하든 말던 무시하고 제 뜻대로 하며 살았습니다.
가끔 집에 내려가면 제 얼굴 볼 때마다 한숨 쉬시고 화를 내시니까 저도 집에 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어차피 부모님에겐 잘난 오빠가 있으니 저는 저대로 제 인생이나 잘 살기 위해 노력했어요.
아무튼 제가 참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빠의 상견례가 끝났고 저는 나중에 축의금이나 넉넉하게 넣어줘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아무리 일이 바빠도 그렇지 나 상견례 할 때도 안 오고 진짜 너무하네.
요즘 회사가 너무 바빠서 그랬어. 주말에 하루 쉬려면 눈치가 엄청 보이거든.
나도 오빠처럼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쉬는 직업이었으면 내려갔겠지.
그래 바쁘다는데 어쩔 수 없지 하나뿐인 오빠가 결혼하는데 결혼 선물은 제대로 준비하고 있어?
결혼 선물은 무슨 나한테 지금까지 야금야금 빌려간 돈만 해도 100만 원은 그냥 넘을 걸 그거 안 갚아도 되니까. 축의금으로 퉁치는 게 어때?
너는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하냐? 오빠가 급하다 보면, 5만 원 10만 원씩 빌릴 수도 있는 거지 아무튼 오늘 이런 얘기하려고 연락한 건 아니고, 너 작년 초에 하남의 아파트 하나 사놨다고 했지.
그거 나중에 나 결혼하면 들어가서 살려고 다행히 전세 끼고 좀 싸게 샀어 그거 전세 언제 끝나?
너 결혼하기 전까지는 내가 들어가서 좀 살면 안 될까 요즘 신혼집 구하기 너무 힘들어서 그래.
전세 내년 3월에 끝나는데 근데 나도 내년에는 남자친구랑 결혼할 예정이야.
오빠가 집에 들어가서 살더라도 어차피 몇 달 못살아 그냥 형편에 맞게 신혼집 구하는 게 나을걸?
너 내년에 결혼해? 왜 벌써 하려고 그래? 엄마 아빠한테 허락은 받았어?
아니 내가 결혼하는데 허락을 왜 받아 남자친구랑 대충 이야기는 다 끝냈어.
앞으로 한 이 년만 더 있다가 결혼해라 내가 집에서 딱 이 년만 살다가 나갈게.
무슨 소리야 오빠 내 나이 벌써 32이야 다른 이유도 아니고 오빠한테 집 빌려주려고 내가 2 년이나 더 결혼을 밀어야 돼?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말고 능력껏 집 구해.
진짜 안 되는데 벌써 이야기 다 해놨는데 큰일이네..
나는 모르겠다. 오빠가 알아서 해 저한테 사전에 한마디 상의도 없이 왜 내 집에서 신혼살림을 차리려는지 모르겠어요.
작년까지 직장생활하면서 월급의 70%는 항상 돈을 모으면서 살았습니다.
저희 집안 경제 상황도 애매하고 애초에 부모님에게 뭘 바래본 적 없었기 때문에 믿을 건 돈뿐이라는 생각으로 더 악착같이 돈을 모았던 것 같아요.
재테크 공부도 하면서 주식에도 돈을 넣어놓고 펀드에도 투자를 하고 있었지만 작년 초에 모두 정리하고 하남의 금매로 나온 아파트를 한 채 구입하게 되었어요.
4억 5000짜리 집이었는데. 전세 2억 8000 끼고 제 돈 1억 7000 넣고 구입했습니다.
그 뒤로 가격은 더 올라서 지금 시세로는 6억 정도 하는 집이에요.
어차피 저는 현재 회사 근처에 자취방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들어가서 살 생각 없고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와 내년 가을에 결혼할 생각이라서 그때 신혼생활을 집에서 시작할 예정입니다.
저희 오빠는 그동안 집 구할 돈도 안 모아놓고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결혼을 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더라구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단칼에 거절했더니, 며칠 후에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니 오빠한테 집을 안 빌려준다고 했다면서 아니 그게 뭐라고 안 빌려주니 전세 줬다 생각하고 2 년만 살라고 그래.
오빠한테 못 들었어? 나 내년 가을쯤 결혼 생각하고 있다고 나 결혼하면 내가 집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집을 빌려줘 결혼은 무슨 너 때문에 니 오빠 파혼 당하면 책임질 거야?
잔말 말고 2 년 정도는 집에서 니네 오빠 살라고 해.
아니 내가 오빠가 파혼하든 말든 책임을 왜 나한테 물어? 엄마가 나 집 사는데 돈 보태줘 봤어?
맨날 돈 없다고 용돈 달라고 할 때만 우리 딸이라고 하지 이럴 때 보면 친엄마가 맞는지 모르겠다니까 너 그게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그
럼 너네 오빠 신혼집도 못 구하게 생겼는데 그걸 보고만 있어?
그러길래 돈도 없이 무슨 생각으로 결혼한다고 하는 거야 ?
파혼을 당하던지 말던지 나는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집 달란 이야기할 거면 연락도 하지 마.
엄마나 오빠나 내가 보기에는 다 똑같은 인간이야.
키워줬다니 은혜도 모르고 너 진짜 오빠한테 아파트 안 빌려주면 앞으로 집에 내려올 생각도 하지 마.
안 가 안 간다고 그놈의 집구석 내가 먼저 안 갈 거야. 그렇게 엄마랑 싸우고 앞으로 당분간은 집에 내려갈 일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제가 뭘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한 뒤로는 집에서 아무런 도움 받은 것도 없고 대학교도 장학금 받고 모자란 건 학자금 대출받아서 졸업했고 그때부터 혼자 아르바이트해서 모든 생활비를 직접 벌어서 썼어요.
서울에 있는 호텔로 취업했을 때도 엄마한테 단칸방 월세 보증금 하게 300만 원만 빌려달라고 말씀드렸다가 호텔은 무슨 호텔이냐고 그냥 집에서 공장이나 다니라는 소리만 들었던 것이 전부였죠.
결국 가진 돈 60만 원 들고 서울에 올라와서 1년 넘게 창문 없는 고시원에서 살았고 돈 없으면 얼마나 비참하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뼈저리게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해준 것도 없는 엄마지만 종종 돈 필요할 때마다 용돈 좀 보내달라고 연락을 하셨고 그래도 부모라고 저도 없는 살림에 10만 원씩 보내드린 적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오빠라는 인간도 그렇고 엄마 또한 자기들 돈 필요할 때 연락하는 사람들일 뿐이고 제 인생에 도움되는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예정대로 남자친구와 내년에 결혼할 생각이고 과정에서 부모님 허락은 받지 않을 겁니다.
만약 집을 빌려주지 않은 것 때문에 제 결혼식에 오지 않겠다고 하면, 저도 앞으로 다른 가족은 없다 생각하고 살 거예요.
사실 요즘 들어서는 저희 가족들이 없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원래는 오빠 결혼식 할 때 가전제품을 하나 사주거나 축의금을 100만 원 정도 해줄 생각이었는데 그럴 생각이 싹 사라져 버렸어요.
농담으로 한 소리였지만 제가 지금까지 오빠한테 야금야금 빌려준 돈만 100만 원이 넘을 테니 그걸 축의금이라 생각하고 퉁치고 넘어가려구요.
그래도 식구라고 잘해주려고 했지만, 더는 화딱지가 나서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