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연은 얼굴에 난 흉터 때문에 평생을 가슴아프게 산 한 남성의 이야기 입니다.
철수는 20살 성인이 된 기념으로 여름휴가를 고향 친구들과 함께 계곡으로 떠났습니다.
그날 철수와 친구들은 계곡에 들어가서 물놀이와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그 누구보다도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철수는 무슨일인가 싶어 급하게 달려갔고 비명이 나는 곳은 다름아닌 물살이 쎄고 딱 봐도 물이 깊어보이는 계곡이었는데요.
그 곳에선 한 여성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살려주세요”하며 애타게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고 있던 것이었죠.
함께 온것처럼 보이는 여성의 일행은 어찌할줄 모르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요.
이때 철수가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신발을 벗어 던지며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철수는 그 여성을 구해 나왔습니다.
하지만 철수는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면서 그만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철수가 눈을 떴지만 철수가 있던 곳은 다름아닌 병원이었습니다.
옆에는 철수의 어머니가 그의 병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었고 어머니는 저에게 이마며 턱이며 합해서 100바늘 가까이는 꼬맸다며 설명을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모르는 한 아줌마가 매일 저를 찾아 왓습니다.
올때마다 과일이며 빵이며 음료수며 뭘 이것저것 사오면서 계속 엄마께 죄송하다고 했고 저한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 아줌마는 알고보니 물에 빠진 여자의 어머니였던 것인데요.
저는 아주머니에게 “그 여자애는 괜찮대요?”라며 얼굴에 붕대를 칭칭감은 채 아무렇지 않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조금 웃으며 “응 덕분에 너무 괜찮아요”라며 다리에 긁힌 상처 말고는 아주 멀쩡하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순간 내가 이렇게 까지 다치면서 구했는데 그 여자마저 괜찮지 않았다면 무척이나 허탈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안심을 했습니다.
그러고나서 몇주일 후 퇴원하는 날 처음으로 붕대를 푼 나의 모습을 보는 순간 너무 충격적인 모습이어서 내 마음은 쿵하고 주저앉고 말았는데요.
얼굴 바깥쪽으로 이마부터 광대까지 쭉 찢어진 흉터와 턱에는 가로로 길게 찢어진 흉터 이외에도 자잘자잘하게 찢어져 얼굴이 거의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바다 수영에만 익숙해 아무생각없이 다이빙을 한것이 큰 잘못이었죠.
아주머니는 저의 병원비는 모두 결제를 하며 앞으로의 얼굴 치료까지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저와 저의 어머니는 부담 스러웠기 때문에 이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만해도 저는 저의 얼굴 때문에 인생이 이렇게 꼬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퇴원을 하고 몇달 후 저는 아버지가 “사회생활을 하려면 남자가 영업은 배워야돼”라는 말씀을 하시며 아버지의 친구분 회사로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 곳에서 저는 막내 영업사원이었고 매장에 오는 손님들에게 필요한 것을 여쭤보고 다른 선임들에게 연결시켜주는 정도, 그리고 문앞에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업무를 했었죠.
그러던 어느날 문제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 날은 묘하게 손님들이 저를 더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는데요. 그 날 저녁 퇴근을 하기전 부장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철수야, 내가 네 아비 친구고 널 정말 내 아들처럼 생각하는 거 알지?”
“네, 부장님”
“근데.. 이게 나도 어찌 못 할것 같다.”
“너의 그 상처가… 오늘 하루만 손님 몇 명이서 그 얘기를 하시더라… 컴플레인이 너무 들어오니 차장님 께서도 말씀도 나오시고..”
“부장님 이건 앞으로 치료를 좀만더 하면 많이 호전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아니, 우리는 그걸 기다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철수야…”
영업사원은 그 회사의 얼굴이라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저도 일을 해보면서 그것이 뭔지 잘 알기 때문에 회사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저는 수긍을 했고 다행히도 일에서 짤린것은 아니고 부장님의 추천으로 경상도에서 더 안쪽에 있는 공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장일은 한번도 배운적이 없었고 그곳에서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받는 눈치와 차별이 절 너무나 힘들게 했습니다.
심지어 함께 일하는 여자동료는 저에게 “눈 마주치면 토할것 같아”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저는 공장을 그만두려는 마음이 점점 커졌습니다.
점점 사람들에게 소외되고 저 또한 친해지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친구들도 보지않고 부모님 조차 조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렇게 공장은 그만두고 저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엉엉 울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군대에 갔고 군대에서 역시 저의 흉터를 보고 저에게 호의적이기 보다는 굳이 친해지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한가지 좋았던 점은 악덕 선임도 저는 딱히 터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전역을 하고 저는 하루종일 집에서 쳐박혀 어머니 아버지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한량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던 도중 아버지의 건강이 안좋아 지셨다는 이야기를 듣자 저는 너무 무서워졌습니다.
이제 내가 이집에 가장이 되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바로 직장을 알아보러 여기저기 간단한 아르바이트 부터 원서를 넣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면접을 보러가자마자 저의 얼굴만 보고 이미 저는 탈락이었습니다.
그렇게 낙담을 하던 도중 아버지가 저에게 “손님이랑 딱히 얼굴 마주하지 않아도 되고 너도 편한 택시를 해보는거 어때?”라며 제안을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가지 희망이 생겨 바로 다음날 운전을 아버지에게 배워 2달만에 면허를 따고 운전 맹연습 끝에 택시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택시일은 저와 정말 잘 맞았습니다.
손님들도 저의 얼굴을 볼 일이 잘없으니 딱히 저에대해 적개심을 느끼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20여년간 택시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지점장님이 저에게 택시청소를 하라며 강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사에서 검사라도 나오나요?”라며 물었고 회장이 직접 순회를 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세차를 하고 있었는데 저희 사무실로 한 노인과 제 또래의 남성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점잠님이랑 대화를 하던도중 지점장님이 저를 바라보며 “저 친구가 우리회사에서 7년넘게 일하는 친구인데 정말 모범기사 입니다.”라며 저를 어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연스레 함께 앉아 차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회장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제가 실례가 안된다면 그 얼굴 흉터는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의 흉터에 대해 이렇게 실례를 구하고 공손하고 진심으로 물어보는 분은 그래서 저는 제 어릴적 사연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잡자기 회장님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주저 앉으시고는… “자네로구만 자네가 맞아…. 여기서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되단… 흐윽”
저는 회장님의 알수없는 행동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곧 회장님이 꺼내신 이야기에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0년전 회장님은 저와 같은 경상도에 사셨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용달 운송업을 하고 있었는데 소자본으로 시작해서 3~4대 가지고 회장님도 직접 배달을 하며 바쁘게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장님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딸은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녔고 무용을 전공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여름방학에 고향으로 내려왔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계곡을 가게 되었는데 계곡에서 발을 헛디뎌 물살에 떠밀려 목숨을 잃을 뻔했고 기적처럼 한 청년이 그 목숨을 구해줬따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듣는순간 설마설마 했습니다.
회장님은 자신의 딸을 구해준 청년이 바로 저라고 했습니다.
당시 제가 입원했을 때에는 회장님이 너무 바빠서 못찾아 왔다는데 나중에 가보니 전 퇴원해 있었고 병원에서는 개인정보를 알려주면 안되어서 저의 이름 하나만 알아서 아무리 수소문을 통해 찾으려 해봐도 찾을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딸은 당시 다리를 크게 다쳤었으며 그 때문에 무용도 포기하고 경영학으로 전과를 해 경영을 공부했고 그런 딸이 회장님을 도와 택시 운수업에 발을 들여 지금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하죠.
그러면서 이 모든것이 다 제 덕분이라고 계속해서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당시에는 왜그랬는지 모르지만 뭔가 아버지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던것 같습니다.
회장님은 그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하실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이야기를 들은 회장님은 늦었지만 사례를 하고 싶다고 하셨고 우선 자신 때문에 평생을 택시 일만 해왔으니 좀 더 좋은 근무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며 함께 서울에 갈 것을 권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홀어머니를 모셔야 했기 때문에 회장님은 잠시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내년에 정년인 지점장님이 나가시면 그 자리를 저에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뒤로 회장님은 저를 이끌고 병원으로 가 친한 의사에게 저의 얼굴 흉터를 고칠방법이 없냐고 물어보시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의사는 다행히도 꾸준히 치료를 한다면 충분히 가려질 수 있는 흉터라고 했고 저는 꾸준한 치료로 현재는 흉터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까지 되었습니다.
당시 저의 월급에는 정말 평생 구경도 하지 못한 금액의 월급이 제 통장으로 꽂히게 되었는데요.
저는 너무 놀래서 회장님에게 연락을 했고 다시 돌려드린다고 계좌번호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회장님은 “허허 재밌는친구네. 나는 우리 딸의 목숨값과 그동안 자네가 겪었던 세월의 아픔에대한 값을 준것 뿐이네.
우리딸의 목숨값이 그것도 안되나?”라며 말을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고 회장님은 바쁜일이 있다며 먼저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그 돈으로 반지하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신축 빌라 전세집으로 이사를 할 수가 있었고 현재까지 택시회사 지점장으로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과거는 어쩔수가 없지만 지금의 근무환경도 너무 좋고 월급도 많아서 이보다 더 좋을수가 없는것 같습니다.
또 가끔 어머니와 여행도 다니며 남부러울것 없이 살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복이 온다는 말을 전 믿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말을 전 확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