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일년째 방안에만 누워 계신다.
환경 미화원인 아버지가 새벽에 나가시다
일년전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당하신 것이다.
첨에는 아버지가 안됐다기보다는 창피했다.
어린 마음에 일도 못하고 소위 말하는
불구가 된 아버지가 창피했다.
친구들이 집에 오는일은 없었다.
행여 친구들이 놀러온다면 난 온갖 있는 핑계
없는 핑계를 만들어내야 되었다.
아마 친척들이 집에 왔다는 이야기는
수십번도 더 써먹었을거다.
첨에는 집요하게 재촉하다가도
이젠 친구들도 우리집에 오는것을 포기했다.
나로서는 한편으로는 다행이고
한편으로는 서글퍼지기도 했다.
난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와야만 했다.
고등학생인 형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해야하고
엄마는 공장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면 언제나
그렇듯이 홀로 아버지만이 누워 계신다.
난 아빠만 보면 항상 화 먼저 났다.
조심하지 않고 사고를 당해 엄마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그랬고 남들과
똑같을 수 없는 내 초등학교 생활이 그랬다.
모두가 아빠 탓인 것만 같았다.
점심이야 엄마가 공장에 나가기 전에
방안에 차려두면 드시지만 저녁은
내가 와서 차려드려야 한다.
어린 나에게는
힘들일이기보다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우리집은 방이 두개뿐이다.
한개는 안방으로 엄마와 아빠가 쓰고
나머지 한개는 작은 방으로 나와 형이 썼다.
그러나 고등학생인 형이나 밤늦게 고된
모습으로 들어오는
엄마를 보는적은 거의 없었다.
난 항상 일찍 잤기 때문이다.
그나마 엄마는 아침에라도 보지만 형은
“대학”에 가기 위해 항상 바쁘다.
방과후에 집에 오면 아빠 밥을 차려드리고
안방에서 잘때까지 TV를 본다.
그나마 그 텔레비젼을 보는 것이 내가
아빠에게 밥을 차려드리는 일외에도
유일하게 안방에 들어가는 일이다.
아빠는 뉴스를 좋아하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하반신을 못쓰시는
아빠로서는 다른 프로를
싫어하시는게 아니라 달리 볼만한
프로가 없었던 것이다.
뉴스야 귀로만 들어도
대충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니깐
그것만을 고집하신 것이다.
“석현아 뉴스 안하니?”
“저 지금 이거 보는거란 말이에요.”
“그러니?”
“잘 안들려요.말시키지 마세요.”
“그래…미안하다…”
아빠는 언제나
이렇게 나에게 쉽게 양보를 하셨다.
난 사실 만화영화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건 일종의
나 나름대로의 시위였다.
아빠가 뉴스를 못보게 하기 위한.
난 만화영화는 좋아하진 않지만
대신 장난감을 좋아했다.
특히 프라모델은 항상 나의 시선을 끌었다.
만화영화가 끝나고 장난감광고가 나오면
난 그걸 항상 뚤어지게 쳐다보곤 했다.
‘아빠가 이렇게
누워있지만 않으면 나도 저걸 살텐데…’
난 항상 이 모든게 아빠 탓인것만 같았다.
어느날 밤이었다.
자다가 오줌이 마려웠다.
형은 어느새 들어와서 옆에 골아떨어졌다.
뒷간으로 가려는데
안방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엄마도 들어왔나보다.
“뭐하려고요? 누워 있는 사람이…”
“그냥 귤이 먹고 싶어서…”
“알았어요. 제가 내일 사오죠”
“아냐…당신 바쁠텐데 그냥
석현이에게 사오라고 하지 뭐”
“흠…그럼 그렇게 하세요.”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
엄마는 힘들게 일하는데 고작 귤이
먹고 싶다고 엄마에게 돈을 달라는거 같다.
난 이렇게 무능한 아빠가 싫었다.
차라리 아빠가 “없는” 아이가 되고 싶다
그 날도 학교가 끝나고 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채 집으로 왔다.
내가 없으면 아빠가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집에 엄마가 있었다.
공장이 일이 없어서 당분간 쉰다고 하신다.
엄마는 좁은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시고
난 텔레비젼에 앞에 앉아 만화영화를 봤다.
당시 한참 유행하던 ‘매칸더V’였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 아빠가 불렀다.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오줌통이다.
아빠는 거동이 불편해서
병원에서 준 오줌통에 소변을 봤다.
항상 약을 복용하시기 때문에 오줌냄새는
어린 내가 참기에는 정말 힘들었다.
미안한 얼굴로 나에게 오줌통을 내밀었다.
아빠의 부름에 엄마가 잠시 얼굴을 내밀더니
오줌통을 들고 있는
아빠를 보곤 다시 설겆이를 하신다.
제기랄~
이건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것 같다.
내가 지을수 있는 인상은
다 쓰면서 오줌통을 받았다.
그런데…
오줌통을 건네는
아빠 손에는 삼천원이 들려 있었다.
“쉿…너희 엄마가 보면 뺏을거다.
이걸로 저 텔레비젼에 나오는 장난감 사.”
“…”
그 귤 값 이었다.
아빠가 어디서 갑자기
돈이 생겼을리는 없다.
물론 아빠는 이 돈으로 저 텔레비젼에
나오는 장난감을 사기에는
모자란다는 걸 모르실거다.
당시 삼천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텔레비에서 광고하는
장난감을 살만큼 큰 돈두 아니다.
눈물이 났다.
그리 많은 돈은 아니지만 아빠의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났다.
“…..죄송해요.”
“허헛..뭐가…?”
“그냥요.”
“훗..그러고보니 우리 석현이도 다 컸구나.”
아마 그때부터 난 철들기 시작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