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가수이자 한국가요계의 전설 그리고 한국 대중음악의 상징 역대 가요대상 최다 수상자인 조용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가수가 있습니다.
바로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국민 디바 이선희인데요. 이선희는 8~90년대를 풍미한 최고의 가수로 데뷔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 가수입니다.
하지만 가수로서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녀는 한 여자로서는 행복하지 못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며 큰 상처를 받아야 했는데요.
이선희의 첫 남편은 이선희와 이혼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결혼을 할 때는 불륜녀라는 꼬리표가 붙어 남들 몰래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는데요.
왕성한 활동을 하던 1992년 이선희는 돌연 결혼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선희는 자신의 매니저이자 음반 제작자인 윤희중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일하면서 매일 마주치던 두 사람은 점차 사랑이 싹트고 부부의 연까지 맺게 되었는데요. 음악적 교류가 원활했던 두 사람은 딸을 낳고 기르며 행복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하지만 결혼한 지 6년 만에 이혼 소식을 전해 세간에 충격을 줍니다. 이혼사유는 바로 남편 윤희중의 사업이 몰락한 것이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8년 IMF가 터지면서 윤희중은 사업이 망하고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습니다.
이선희 명의의 집이 경매에 부쳐질 정도로 상황이 힘들어졌는데요. 점점 더 상황이 심각해지자 결국 두 사람은 이혼에 합의하며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합니다.
윤희중은 이혼 후에도 수습하려 열심히 노력했지만, 불어난 빚은 감당이 되지 않고 날마다 빚 독촉이 시달렸습니다. 발버둥쳐도 헤어나올 수 없는 늪 같은 상황에서 그는 몸부림치다 1999년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했는데요.
약을 먹고 세상을 등진 전남편 윤희중의 비보에 이선희는 오열하며 실신까지 했습니다. 비록 이혼한 전남편이지만 사랑하는 딸의 아버지이기에 슬픔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 이선희는 마음을 추스르며 가수 활동을 이어나갔는데요. 왕성한 활동을 하던 중 2006년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놀라운 행보를 보였고 건축가 9살 연상의 정 씨와 다소 급작스러운 깜짝 결혼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결혼도 결혼 14년 만인 2020년에 협의 이혼으로 막을 내렸는데요. 음악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거대한 그녀가 여자로 사는 삶은 행복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두 번이나 사랑에 실패하며 눈물로 얼룩진 세월을 보냈을 텐데요. 늘 밝은 미소 뒤에 감춰진 그녀의 슬픔에 심심한 위로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