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10.13 특별선언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10.13 특별선언은 1990년 10월 13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날입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날 이후 약 2년이란 시간 동안 무려 1만 6천여명의 경찰을 투입시켜 대규모 조폭 소탕을 실시하였는데요. 당시 대한민국은 조직폭력배의 범죄 행태가 날이 갈수록 심한 상태였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오죽하면 “헌법에 부여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범죄와 폭력을 소통해 나가겠다.” 라고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런 상황이 왜 벌어진걸까요?
해당 사건은 한 군인에 의해 벌어지게 됩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집권 4년차를 앞두고 국군보안 사령부 소속의 윤석양 이병이 친위 쿠데타를 성공시키는데 방해가 될 만한 목록을 만들어 사찰을 하였다는 청명계획이 폭로를 하였는데요.
친위 쿠데타란 권력을 쥐고 있는 측이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스스로 벌이는 쿠데타로 정부에서 자신과 반대되는 인물들을 모두 사찰을 하였으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대중, 노무현, 이기택 등 유명정치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정치인들은 물론 김수환 추기경을 포함한 종교인, 언론인, 심지어 민간인 까지 약 1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신상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민심은 들끓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정부는 민심을 억누르기 위하여 10.13 특별선언을 하게됩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우리나라의 치안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상태였는데요. 조직 폭력배들의 각종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민심들의 시선을 청명계획에서 조직 폭력배 검거로 돌리는데 성공하였고 1990년 한 해에만 4000명에 달하는 경찰들을 충원했을 만큼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조직 폭력배 검거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범죄 폭력 전쟁을 선포한 뒤 경찰 2200여명이 부상을 입고 126명이 순직을 하는 등 정말 치열한 검거가 이루어졌는데요.
특별선언 이후 1년동안 250여개의 폭력조직에서 800여 명을 검거하게 되었고 이들이 운영하던 퇴폐업소 13만여 곳을 적발하게 됩니다. 결국 조직 폭력배 소탕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는 듯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한 경찰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는데요. 아무래도 범죄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어떻게든 성과를 내서 승진을 해야되겠다는 경찰들이 일부러 지나가던 평범한 시민을 붙잡아 소지품 검사를 하고 무작정 범죄자로 만들어 검거를 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죄를 저지르지 않았어도 강제로 고문을 통해 범죄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었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하여도 불구가 되어 풀려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경찰들의 만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였는데요.
경찰들은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든 것도 모자라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발생하게 됩니다.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고 약 6개월이 지난 1991년 4월 26일 모 대학교의 강모씨는 자신의 학교 총장학생회장이 경찰에 잡혀간 사실을 알게되고 시위대에 참석하여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경찰은 백골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쇠파이프 까지 휘두르며 시위대를 진압하였는데요. 그 떄 강모씨는 경찰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집단 구타를 당하였고 결국 뇌출혈로 사망을 하게됩니다.
범죄와의 전쟁 선포로 인해 많은 조직 폭력배들이 검거가 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무고한 생명을 잃었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