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제발요….” 늦둥이 남편과 결혼한 저는 시어머니와 50살이 넘게 차이가났고 시집살이 중 시어머니의 행동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랑이 늦둥이라 시어머니랑 저는 50년 넘게 나이 차가 났습니다.

저 시집오고 5년만에 치매에 걸려 똥.오줌 받아낸 세월이 4년..

시집 와서 5년간 어머니가 저한테 베풀어주신 사랑 덕분에 쪽잠을 자도, 환자식을 매일 먹어도, 이쁘게 커가는 내 딸을 매일 안봐도, 평생 이러고 살아도 살아만 계시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그 사랑은 진실로 선하고 지혜롭고 어진이를 다른 사람에게서는 본적이 없었습니다.

알콜중독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계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저 어릴때 집을 나가 행방불명인 엄마. 경찰서를 밥먹듯이 들락거리는 오빠.

그런 가정에서 매일 매맞고 자란 저…

신랑에게 저의 모든 이야기를 들으시고 눈물을 글썽이며, 빨리 내 식구 만들자며….

2천만원이 든 통장을 내어 주시며, 결혼 예단에 보태라고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저를 진심으로 위해주시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에 어머님댁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늦둥이인 신랑이 10살도 되기 전에 아버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닌 자식다섯을 키우시면서 언성 한번 높이신 적이 없다하셨습니다.

공주같이 귀염받고, 사랑받으며 행복한 날을 보냈습니다.

명절날에도 만들어 놓은 전에 설탕을 쏟는 사고를 친 저를 당신이 쏟아 망친것처럼 늙으면 죽어야한다며 손에 힘이 빠져 놓쳤다고 엄호하신 어머님.

단것 먹으면 몸에 안좋다며 야단을 하시면서도 볼일을 보고 들어오실때는 어김없이 맛있는 먹을 거리 사오신던 어머님.

셋이서 삼겹살과 소주를 먹고 술이 취해 자라온 서러움에 엉엉울며, 술주정을 하여도 혼내기는 커녕 제 손을 꼭 잡고, 저 보다 더 서럽게 우시며 무서웠지, 서러웠지 니가 내딸로 태어났음 오죽 좋았겠냐. 내가 더 잘해 줄테니 이제 잊어라 모두 잊고 웃으며 살자 하셨습니다.

잘 해드리지도 못했는데 제가 무슨 귀한몸이라고 일 시키기 아까워서 손도 잘 못 되게 하시던 우리 어머니.

치매에 걸려 어린아이가 되신 어머니.

어느날 저에게

“뉘집 딸이고? 이쁘게도 생겼네”하시는데 울컥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나는 어머니 딸이지요. 할머니는 딸 있어요?”라 했더니 “그럼~ 해주 우리 막내딸, 위로 아들 둘이랑 딸 셋있는데 막내딸이 최고 이뻐” 병원에서 할머니라 부르니 당신도 할머니라 하셨습니다.

어머님 볼세라 흐르는 눈물을 훔치느라 혼이 났습니다. 치매걸리기 전에도 너는 내 딸이다 막내딸이야라고 하시더니, 어떻게 며느리가 딸이 될 수 있나생각하고 살았는데 진정으로 딸이었던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병이 나기 전에도 한결같은 사랑에 저도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고 잘 할려고 노력은 했지만….

형편이 어렵다는 형님. 병원에 얼굴도 안비치던 형님이 돌보신다고 해도 사양하고 제가 했어야 할 당연한 일인데, 사랑 받을 때는 왜 몰랐을까요?

깊은 밤 ‘기저귀를 갈아 드려야 되나’ 조용히 이불속으로 손을 넣자 어머님이 저의 손에 만원짜리 한장을 주시면서 “아침에 옆에 할매 가고 침대밑에 있더라. 너 맛난것 사먹어라.”

면회 온 다른 자식들은 안주시고 저에게 주시면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맛있는거 사먹어라”

그리고, 새벽 어머님은 인자하신 웃음을 머금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울다 졸도하고 울다 졸도하고 어머니 가시는 길에도 어리광을 피웠습니다.

시집살이가 무었인지 느낄 틈 조차 없게 하였던 어머니와 시집식구들…

어머니 슬퍼하시지 않게 살아계실때보다 더 우애좋게 잘 살자며 약속하였습니다.

단 것 먹지말라면서도 먹어라며 밀던 까만 비닐봉지… 볼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꿈에 한번 나오시면 살았을때 하지 못했던 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말 한번 하고 싶은데…

다음 생에는 고생한하시고 남편 사랑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살으시길, 그리고 저는 어머니 딸로 태어나고….

부디 천국가셔서 평안하시길 바래봅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