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 천재적인 기타실력으로 소문이 자자하던 기타리스트 김태원은 밴드 ‘부활’을 결성하면서 당시 무명가수 이승철을 보컬로 기용, 현재 우리가 아는 부활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김태원은 기타 실력만큼이나 작곡 능력도 뛰어나 앨범 전곡을 직접 만들며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보였고 덕분에 1집과 2집 모두 초대박을 기록하면서 부활을 전성기를 맞게 됐습니다.
하지만 밴드 특성상 대중의 주목은 모두 보컬 이승철로 향하게 됐고 정작 부활 성공의 핵심 주축으로 힘쓴 김태원은 상대적으로 외면을 받으며 두 사람 사이에 불화의 기류가 싹텄습니다.
특히 그룹 활동 방향에 있어서도 두 사람은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고 합니다.
이승철은 온갖 행사와 무대 스케줄을 소화하며 돈과 명예를 누리고자 했지만 김태원은 ‘아티스트’라는 이유로 행사를 거부하며 서로를 향한 불편, 불만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 1987년 김태원이 대마초 투약 혐의로 구속되면서 이승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부활을 탈퇴했는데요.
이후 이승철은 대마초 금단 현상으로 반쯤 폐인이 된 김태원을 찾아가 김태원이 작곡한 ‘회상3’ 라는 곡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김태원은 옛정을 생각해 이를 승낙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승철은 김태원의 허락도 없이 이 곡에 <마지막 콘서트>라는 제목을 붙여 자신의 솔로 앨범에 수록했습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 처럼 이승철의 솔로 전성기로 이어졌습니다.
‘희야’ ‘소녀시대’등 발표하는 곡마다 대박 행진을 이어가던 이승철은 떡상, 대마초로 폭망한 김태원의 엇갈린 행보가 한동안 이어지던 가운데 사건이 발생합니다.
1990년 이승철이 이번엔 대마초 혐의로 구속되면서 이승철 역시 하루아침에 폭망하게 되는데요.
5년여간의 방송 정지후 1996년 댄스 곡으로 복귀를 시도했지만 인기는 예전 같지 않았고 그렇게 80년대를 주름잡던 부활의 김태원과 이승철은 잊혀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던 2001년 ‘네버엔딩 스토리’라는 명곡을 탄생시킨 김태원이 아주 오랜만에 이승철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잠정적 해체 이후 십수년 만에 부활의 재결합이 성사됐는데요.
이 곡은 아이돌 그룹이 꽉 잡고 있던 당시 가요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각종 방송사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물과 기름은 영원한 물과 기름인 걸까요.
두 사람은 이번에도 역시 행사 스케줄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다 이승철 혼자 지역 행사를 감행하며 관계가 틀어졌습니다.
여기에 콘서트 실황 DVD를 발매한 이승철이 김태원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과 상의도 없이 ‘이승철with부활’이란 표현을 사용하면서 아예 갈라서게 됐습니다.
마치 이승철 본인이 주인공이고 부활은 들러리인듯 한 표현에 김태원이 단단히 분개한 것인데요.
이 사건으로 큰 언쟁을 벌인 두 사람은 이승철이 또 한번 부활을 탈퇴하면서 영영 찢어지게 됐다고 합니다.
둘 중 누가 더 잘못했다를 따지기 이전에 서로를 위해 조금만 맞춰 줬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 지 씁쓸함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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