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저를 살렸습니다…” 사형 하루 전날 한국 덕분에 극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이란 여성의 감동적인 사연에 모두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란 사람 사엘이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 제가 한국에서 유학 생활하게 된 이유와 이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이렇게 사연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사엘님 먼서남아시아 이란에서 사연을 보내주셨군요.

어떤 사연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란에서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을 가지고 자랐어요. 그런데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한 이란에서 제 꿈을 이루기는 힘들었죠.
이란은 기본적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였어요. 가장 크게 대두되는 히잡을 입는 것만 해도 그것을 보여줄 수 있죠.
처음에는 생존과 안전의 이유로 역사적으로 여성들에게 히잡을 입히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과거의 경전 코란에 쓰여지길 여성의 몸을 가려서 정숙한 무슬림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커지면서 근대와 현대에 와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학대의 산유물로 변모하게 된 것이죠.
히잡을 하게 된 이유가 그러한 종교적인 부분에서 기반이 되었던 것이군요.


네 맞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풍토 때문에 여자가 원하는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 힘든 나라가 되었어요.
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유학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어느 나라로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었어요.
그러기 위해 인터넷 서칭을 많이 했었죠. 다양한 나라의 이점을 많이 보았지만 그중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나라는 바로 한국이었어요.


한국의 어떠한 점들이 사엘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인가요?
처음에는 한국 영상 콘텐츠들을 구경하던 중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라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어요.
한국 슈퍼모델 준비생들이 나와서 경연을 하며 일 등 하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고 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그런 프로그램이었어요.

그 프로그램을 보며 나도 저기에 나오는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저는 부모님의 기나긴 설득 끝에 한국 유학의 길에 오르게 되었어요.
그렇군요. 실제로 한국 유학 생활은 어땠나요? 기대한 만큼 만족스러웠나요? 만족스럽다 마다요 .


저는 지금 이란으로 돌아와 생활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한국 귀화를 꿈꾸기까지 하고 있는 걸요 .
처음 한국에 갔을 때 히잡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 계속 쓰고 다녔지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복장과 너무도 다른 저를 보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 눈에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답답한 천들로 얼굴을 덮고 있으니 무슨 말이라도 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히잡을 쓰던 안 쓰던 문화적으로 존중을 해주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제가 한 번 대학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히잡을 쓰는 것에 대해 궁금하거나 답답해 하지 않느냐라고요.
저는 친구 대답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한국 사람이 한국 문화를 비추는 것을 존중받아야 하듯이 너는 이란 사람이지 않느냐 우리는 이란 문화를 존중한다.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라고요. 저는 이런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종차별이 거의 없는 한국 문화가 감동 와닿았답니다.
그런데 제 이란친구에게 들었는데 한국과 가까운 일본만 해도 그런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한국으로 유학 갈 때쯤 제 친구는 일본으로 유학을 갔는데 히잡을 쓰고 다니자 어느 가게에서는 히잡을 벗으라며 강요하기도 했답니다. 그렇다고 히잡을 안 쓰면 어떡해요.
피부색 자체가 동아시아 사람들과 다르니깐 거리를 지날 때마다 외지인 보듯이 시선이 그리 곱지 못했다고 해요.
그리고 비단 이것이 일본만의 문제는 아닌 듯한 게 미국으로 간 제 사촌 언니도 같은 경험을 했었거든요.
그냥 한국이 유독 인종차별이 없었던 거예요. 저는 한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이 또 들었답니다.
한국인으로서 제가 다 뿌듯하네요.

인종차별은 어느 나라를 가던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물론 그렇죠. 하지만 이 당연한 것이 보편적으로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실천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리고 한국은 다양성 존중뿐만 아니라 더 많은 장점들이 존재했어요.


제가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데 길거리마다 이색적인 카페들이 굉장히 많고 커피맛도 이랑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진하고 맛있더라구요.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음주가무 문화도 너무 좋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은 놀 때 잘 놀고 일할 때 열심히 하는 그런 실속인 사람들인 것 같았어요.


다른 나라에 비해 치안이 또 얼마나 좋은 밤까지 술 마시고 클럽 문화를 즐긴다고 해서 큰 위험이 없었습니다.
CCTV도 정말 많잖아요. 사실 외국인들이 타국에 와서 혼자 생활하면 안전에 대해서 얼마나 걱정을 하나요?
하지만 그런 문제는 한국에서 절대 겪지 않아도 되었던 거예요.
또한 이란에서는 여러 부분에서 여성들의 자유가 억압되어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아무 콘텐츠나 영상 혹은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업로드할 수 있고 네티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보장되어 있는 나라예요.
인터넷 속도는 또 얼마나 빠르게요 한국의 빠릿빠릿한 문화도 저랑 정말 잘 맞았어요.
하루하루를 계획적으로 알차게 보내다 보니 항상 발전하는 제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자존감이 오르곤 했어요.
물론 피팅 모델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여성의 자유로움은 당연지사고요.


한국에 대한 기억이 좋았다니 제가 다 기쁩니다. 한국에 있을 때 문제점 같은 건 따로 없었나요? 물론 있었습니다.
행복을 티내면 불행이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고 했던가요 유학 생활 도중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제가 히잡을 안 쓰고 다니는 것을 자유롭게 쓴 데 올려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출처 모를 협박성 이메일을 받기 시작했었어요.
메일 내용은 이슬람으로서 여성의 정조를 안 지켰다며 살해 협박 내용이 주가 되었죠.

처음에는 한 두 통의 메일이었다가 어느 순간 수십 통이 저에게 쏟아졌어요.
이미 제 개인정보가 이란 쪽으로 넘어간 게 틀림없었죠.
이란에서는 여성이 히잡을 안 쓰면 사형을 당하거든요. 저는 그때부터 이란으로 돌아가게 되면 사형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 속에서 살았어요. 공부에 집중도 잘 안되고 공포스러움 때문에 불면증도 심해졌어요.
그때쯤 절묘한 시기에 일 안내에서는 여성 시위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었어요.


시위는 여성의 히잡 착용 의무화와 그것을 어길 시 사용을 한다는 법에 대한 반대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근본적인 이란 사회의 남녀 직업에 대한 차별 정치적인 차별 등등에 대한 여성 기본 인권에 대한 시위였습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이 문제가 이란 사회에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
지금이 20세기도 아니고 종교적 법규라는 명목 하나로 자연스럽게 여성에 대한 인권 유린을 범하고 있으며 자유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사회가 과연 온전한 나라의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마침 생각했어요. 이란을 육체적으로 떠나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란인이라면 결국은 이 불합리한 인권유린의 굴레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겠구나라고요.
생각이 마친 후 저는 이란으로 돌아갔습니다. 현재 저는 지금도 이 시위에 참가해서 나와 같은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노력 중에 있지요.
이 시위는 히잡 시위보다도 자유를 얻기 위한 여성들의 포효였던 것이에요.
지금도 시위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하나로요.
정부는 시위를 진압하면서 개미 목숨보다도 우습게 저희 여성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미성년자와 성인을 가리지 않아요. 적어도 어린이들은 보호받아야 하지 않나요? 길 지나가는 사람 쓰러진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고 무차별하게 죽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은밀히 시위 여성들을 성폭행을 한 후 죽이면서 자살로 덮어버리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현재 많은 해외 언론들에서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어요. 우리는 이 시위로 가엽게 죽은 아이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사연을 보낸 궁극적인 이유이기도 하지요 너무 마음이 아픔니다.
기본적인 인권과 생명에 대해서는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 인간 아닌가요 게다가 표적이 여성들만을 향해 있다니요.
21세기에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짓들인가요? 하루 빨리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네 물론입니다. 저는 시위 운동을 하면서 최근 한국 귀화를 준비 중이기도 합니다.
개혁의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찾게 되기까지 운동에 참여하고 이렇게 모든 것이 억압받는 이란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갔습니다.
때문에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한국인의 문화를 심도 있게 익히려고 노력 중에 있습니다.


저를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주었던 기억이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이죠.
한국에 제가 무사히 귀화를 하게 되더라도 이란과 이슬람 여성에 대한 지원 또한 절대 멈출 수가 없습니다.
한국인 분들도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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