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교류가 한참이던 몇 년전, 금강산관광을 가게된 연로하신 아버지와 자식들…
어머지를 먼저 떠나보내시고 적적하게 지내시던 아버지는 저희 7남매의 막내인 저까지 대학공부를 시키시느라 평생 허리 한번 못 피시고 오직 자식들에게만 헌신하셨습니다.
중학교때 전기가 들어올 정도의 시골 산골에서 자랐던 저는 아버지의 금강산얘기를 꺼내는 소리에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금강산 제가 모시고 갈께요. 아버지 가시고 싶으신 곳이면 어디를 못 가시겠어요.”
형제들과 의논을 하고 아버지 생신 쯤 금강산 여행을 가자 의견을 모았습니다.
누나와 형, 그리고 아버지… 이렇게 동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산에 오르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모실 수 있을까 생각한 끝에 어릴적 산에 나무하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 지게에 의자를 만들면 되겠구나’
“설계도처럼 지게를 만들어 줄 수 있습니까?” 기술자들을 찿아다녔지만, 거절하고 가격을 비싸게 불러는데 이것은 아니지 싶었습니다.
가까운 지인이 만들어 주겠다는 연락을 받고 설계도를 내밀었습니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지게” 아버지 전용 지게가 만들어졌습니다.
한사코 싫다는 아버지를 지게에 앉히고 금강산을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게 무게에 아버지무게는 저의 어깨를 가만히 두지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니 기쁘기만 하였습니다.
북측 안내원이 지게를 보고 정색하며 물을때,
“연세 아흔 둘, 아버지 모시고 올라갑니다”라고 했더니 통과시켜주셨습니다.
같이 관광을 갔던 이들이 모두 대단하다며 칭찬과 저의 어깨를 두들겨 주시며 격려를 해 주셔서 한결 힘이 되었습니다.
천선대로 귀면암으로 최고로아름답다는 구룡폭포로…. 아버지께서는 감탄에 감탄을 하시며 금강산 구경에 흠뻑 취하시고 좋아하셨습니다.
무게에 어깨가 굳어가고 허리가 끊어질듯 아팠지만 아버지를 보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습니다.
옆에서 동행한 형님이 도움을 못줘 미안하다며 울컥하는데 제가 웃자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금강산 구경시켜드릴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냐며…
“우리 막내가 일곱중에 제일 예뻐… 내가 남한땅 안 밟어본데가 없고 금강산까지 구경했으니 이제 갈데도 없고 여한이 없어…”
아버진 아들 자랑에 침이 마르십니다.
요즘 고려장은 요양원이라고 합니다. 저 지게를 짊어 질 자식들이 얼마나 있을까 새삼 생각하며 반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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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잘 다니던 학교는 왜 그만두는거야…?” 공부를 잘하던 아들이 갑자기 학교를 그만 두었고 엄마는 아들의 일기장을 본 순간 눈물을 흘리며 오열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